[전태흥의 음악칼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빌헤름 푸르트 뱅글러 지휘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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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2   |  발행일 2017-06-02 제39면   |  수정 2017-06-02
푸르트 뱅글러가 남긴 최고의 명반…LP, CD 어떤 음반으로든 한번은 들어봐야
[전태흥의 음악칼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빌헤름 푸르트 뱅글러 지휘
[전태흥의 음악칼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빌헤름 푸르트 뱅글러 지휘

언제부턴가 e-북으로 책을 보는 것이 오히려 편해져 버렸다. 책장을 넘기며 지금껏 읽은 책의 내용을 확인하고 그 깊이와 두께를 확인하는 종이책의 기쁨과 욕심이긴 하지만 만만치 않은 장서의 기쁨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노안 때문이었다. 처음 e-북이 등장했을 때 책을 모바일기기에 담거나 컴퓨터에 담아서 읽거나 보관한다는 것은 낯설기도 했거니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것이었다. 해서 종이책의 사망선고 운운하는 신문기사에 코웃음 치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눈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돋보기에 의존하게 되면서 글자를 자신의 눈이나 독서 환경에 맞게 키워볼 수 있는 e-북의 편리성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끌리게 되었고 e-북이 아니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종이책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e-북은 여전히 그 목록이 다양하지 않고 한정적이며 규격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나이든 이에게는 또 다른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획기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종이책과 e-북은 서로 공존해 나갈 것이 틀림없다.

조금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음악 소스도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원음은 말 그대로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날것의 음악, 즉 현장의 음악이다. 이 현장의 음악을 다시 듣기 위한 노력이 음악 소스의 발전에 힘이 됐다. 에디슨의 목소리를 녹음한 세계 최초의 녹음에서 출발하여 비닐로 만든 판에 소리를 녹음한 아날로그 방식의 LP와 테이프 녹음, 그리고 디지털 음원의 신기원을 연 CD에 이어 MP3까지 그야말로 녹음 기술의 변화는 150년 남짓한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최근 원음에 대한 인간의 갈증은 오히려 과거의 방식으로 녹음한 LP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오래도록 보관이 쉽고 아무런 잡음이 없는 고도의 음질인 CD와 더 간편하게 수많은 음원을 보관하고 들을 수 있는 MP3는 한때 잡음이 많고 보관이 쉽지 않은 LP를 밀어내 그저 잡동사니로 전락시킨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CD나 MP3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SACD나 FLAC 파일로 소리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고음질로 발전하면 할수록 LP에 대한 애정은 더 커지고 있다. 이것은 진공관 앰프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어떤 이들은 디지털 음원이 훨씬 좋은 음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LP는 그저 과거에 대한 향수 정도로 치부하기도 한다. 실제로 LP를 듣는다는 것은 편리함과는 거리가 있다. 버튼 하나로 음악을 재생하고 또 언제나 다시 들을 수 있는 CD나 MP3보다 LP는 그 재생에서 보관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음반 앞면의 음악이 끝나고 뒷면의 음악을 듣기 위해 일일이 다시 세팅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감수한다는 것은 속도감에 젖어있는 현대인에게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일 수 있다. 하지만 CD나 MP3가 가진 디지털 음질의 매끈함과 편리함이 LP의 잡음 섞인 음질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은 결국 인간은 디지털만으로는 극복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향수, 즉 역사성에 대한 소중함을 간직하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10여 년 전에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만난 영국의 식민지 시절 수도였던 콜카타는 그야말로 LP의 천국이었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로 봉사활동을 가던 길목에는 LP를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오전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늘 그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두운 가게 안에서 아무런 목록조차 없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음반 속에서 일주일 내내 찾아낸 음반은 28장이었다. 그 음반들은 지금도 갖고 있는 음반 중에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음반이다.

빌헤름 푸르트 뱅글러는 브루노 발터, 토스카니니 등 많은 지휘자가 히틀러의 파시즘을 피해 망명의 길을 택했던 것과는 달리 독일에 남았다. 히틀러는 그를 음악책임자로 임명했고 그것에 보답하기라도 하듯이 히틀러의 생일 축하공연을 위해 지휘대에 오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나치에 부역한 혐의로 그는 모든 공식활동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망명을 떠나지 않고 베를린에 남았기 때문에 그의 보호 아래 많은 유대인 연주자들이 생존할 수 있었고 독일음악의 전통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권되었지만, 그의 복권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그가 남긴 음반 중에 가장 유명한 음반은 1951년 7월29일 바이로이트 실황 음반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다. 예전에는 LP로 들어야 했지만 CD로 복각되었다. 그가 지휘를 하기 위해 무대로 오르는 발소리는 LP에는 담겨져 있지만 CD에는 사라지고 없다. 잡음을 제거하려는 디지털이 남긴 아쉬움이다. 빌헤름 푸르트 뱅글러는 예순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베를린필오케스트라는 그의 뒤를 이어 역시 나치 부역문제가 있는 삶을 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로 지휘봉이 넘어갔다. 소문에 의하면 카랴얀이 새 녹음 방식인 CD의 크기를 바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한 장에 들어가는 74분의 분량으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증명되진 않았다. 이 음악은 어떤 음반으로도 한번은 들어봐야 하지만 구태여 LP와 CD를 구분지어 들을 이유는 없다. 다만 느린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LP는 어두운 밤길 외딴곳에서 불빛을 만난 것처럼 또 다른 꿈을 꾸게 할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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