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영덕 축산리 죽도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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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2   |  발행일 2017-06-02 제36면   |  수정 2017-06-02
그곳엔 ‘新정동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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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산 전망대에서 본 동해. 산 중턱에 매점으로 쓰이는 군부대 건물이 있고 축산방파제의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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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산의 남쪽. 오른쪽이 말미산이고 중앙 멀리에 풍력발전소가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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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산 중턱에 서 있는 영양남씨 시조 남민의 망향대.

동쪽 바닷가에 오똑 솟은 푸른 산, 저 꼭대기에 하얀 전망대가 서 있다. 항구를 이리저리 탐색하여 산으로 오르는 두 개의 길을 찾아낸다. 하나는 항구 안길의 끝, 바다를 등지고 오르는 길이다. 산 아래 관광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의 흥이 높다. 다른 하나는 항구 뒷길의 끝, 바다를 곁에 두고 오르는 길이다. 산 아래 천과 바다가 조용히 만나고 날씬한 다리가 그 위를 가만 지나간다. 여기가 좋겠다.


신행정수도 세종시의 정동쪽 말미산
산 아래 川과 海가 만나고 그 위 다리
길이 139m 블루로드다리 건너 죽도산


본래 조선 시대까지 죽도로 불리던 섬
축산천과 동해 모래 쌓여 육지와 연결
그 후 섬은 해발 80m의 죽도산도 완성


◆육지가 된 섬, 산이 된 섬

영덕의 축산항. 미항으로 손꼽힌다. 1924년에 조성되었고 대게 위판이 열리는 전국 5개항 중 한 곳이다. 나지막한 산들이 항구의 사방을 막아 예로부터 피항지로도 이름 높다. 큰 항구라는 느낌은 없었는데 속이 알찬 어항(漁港)이다. ‘축산(丑山)’이라는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등장하는데, “축산포는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지킨다”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에는 “축산도(丑山島)는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소와 같아 축산”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오래 전 축산리는 축산도, 섬이었나 보다.

축산항의 동쪽 바닷가에 해발 80m의 아담한 죽도산이 있다. 산 전체에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죽도산이다. 정상까지 나무 데크가 설치돼 있어 차곡차곡 쉬이 오를 수 있다. 산의 남쪽에서 오르기 시작한다. 축산천이 조용히 바다로 흘러들고 갈매기들이 모래톱에 모여 앉아 졸고 있는 항구의 뒤꼍, 호젓한 시작이다.

한 계단 한 계단 걸을 때마다 동해와 축산 항구의 풍광이 넓어진다. 무성하지만 시야를 가리지 않는 대숲이 아늑하다. 산을 뒤덮은 대나무는 손가락 굵기의 낭창낭창한 소죽(小竹)이다. 조선시대 이 소죽은 화살의 재료로 쓰여서 나라에서 보호했다고 한다. 수군만호의 병사들이 이 소죽 화살로 동해를 지켰을 게다. 조금 오르다 보면 해안 절벽을 에둘러 맞은편 입구와 연결되는 데크길이 있다. 그 길에는 소죽 외에 산에서 자생하는 해국과 산국, 참나리, 섬쑥부쟁이, 칡넝쿨, 쑥, 복숭아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봄날 복사꽃이 피면 산은 꽃목걸이 한 소녀처럼 그리 예쁘다 한다.

죽도산은 원래 죽도였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섬이었다니 아주 까마득한 옛날은 아니다. 축산천이 모래를 운반해 죽도 방향으로 쌓으면서 긴 사주를 만들었고, 동해바다 파도가 축산천의 모래를 운반해 죽도 쪽으로 쌓아서 돌출된 사취를 만들었다. 그 후 사주는 계속 성장해 죽도와 육지가 연결되었고, 섬은 산이 되었다. 축산리도 죽도산도 모두 강과 바다가 완성한 땅인 셈이다.

◆죽도산 전망대 360°

자칫 스쳐 지날 뻔한 대숲 속에 낡은 ‘망향대’ 표지석이 서있다. 서기 755년 신라 경덕왕 14년경의 일이다. 당나라 사신 김충(金忠)은 일본을 다녀오다 풍랑을 만나 축산에 표착한다. 그가 이 땅에 살기를 원해 귀화하자 경덕왕은 그에게 남씨(南氏) 성을 내렸다. 그가 영양남씨의 시조로 이름은 민(敏)이다. 후손들은 의령, 고성 등으로 분파되었으나 모두 남민의 자손으로 격암 남사고가 그의 후손이라 한다. 망향대는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세웠다고 전해진다. 몹시 낡은 표지석 뒤에 새로운 망향대 표지석이 있다.

사람 없는 알록달록한 방공호를 지나자 머리위로 전망대가 가깝다. 죽도산 정상에는 원래 일제 강점기인 1935년에 등대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당시 등대는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서 축산으로 들어오는 어선의 안내자로서 역할을 하며 포항 장기와 울진 중간에서 북극성처럼 빛났다고 한다. 등대는 일제 강점기 말에 미군들의 폭격 표적이 된다 해서 철거됐다. 광복 후에 다시 등대를 세웠지만 몇 해 전 헐렸고 2011년 5월 죽도산 전망대로 새로이 태어났다. 한밤에는 등대의 역할도 겸하고 있어 축산등대라고도 불린다. 전망대 사방 360°가 훤하다.

남쪽 멀리 풍력발전소가 희미하게 보인다. 대게 원조마을이라는 경정2리 차유마을도 살짝 보이고, 가까이로는 작은 축산해변과 블루로드 다리, 그리고 말미산이 보인다. 해발 100m가 조금 넘는 말미산은 말 꼬리 모양이다. 신행정수도인 세종시에서 동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면 말미산 정상이란다. 그래서 축산항은 신 정동진이라는 새로운 호칭도 가지고 있다.

서쪽으로는 축산항과 축산천 사이 오목렌즈 모양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치 항공사진을 보고 있는 듯하다. 마을에는 푸른 지붕이 많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북쪽으로는 수평선을 향해 뻗어있는 축산 방파제와 와우산이 보인다. 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와우산에는 영양 남씨 발상지 기념비가 서있다. 산 아래를 휘돌아 고래불 해변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멀리멀리 곡선을 그린다. 동쪽은 바다다. 오래된 군부대 건물이 대숲 속에 보인다. 지금은 ‘코난 바다를 품다’라는 전망 좋은 찻집 겸 매점이다. 찻집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바닷가 해안선을 에두르는 데크 길과 연결된다.

◆블루로드 다리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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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산과 블루로드 다리. 다리는 축산천을 가로질러 말미산과 죽도산을 잇는다.
말미산은 ‘여지도서’에 “그 형상이 말과 같아 마산(馬山)”이라고 되어 있다. 말에서 말미가 되었으니 측은하다. 말미산과 죽도산 사이에 300m 남짓의 축산해변이 달처럼 휘어 있다. 해변의 가장자리 축산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블루로드다리’가 놓여 있다. 139m 길이에 26m 높이의 현수교다. 걸음마다 출렁이지만 모래톱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들을 깨울 정도는 아니다.

다리를 건너면 작은 광장이다. 작은 푸드트럭 하나가 문 닫은 채 서 있다. 아무도 없는 광장에 한 소녀가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앉아 있다. 소녀의 그림이다. 영덕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여러분의 정성을 기다린다는 안내판이 있다. 모금함 같은, 정성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스카프를 살랑 흔들고는 흩어졌다. 산과 바다의 피부를 스치고, 높은 하늘에 부딪히고, 마을 집들의 벽에 닿고, 모든 거리를 따라 흩어졌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가 7번 국도를 타고 영덕으로 가거나,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안동분기점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영덕IC로 나가도 된다. 7번 국도를 타고 영덕읍 지나 축산교차로에서 축산항으로 들어가면 된다. 축산교차로 전 매정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오보해변에서부터 바다와 나란한 20번 지방도를 타고 축산항에 닿을 수 있다. 축산항 쪽으로 가면 죽도산 동쪽 입구에 닿고, 축산천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죽도산 남쪽 입구다. 블루로드다리는 죽도산 남쪽에 있다. 죽도산 전망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픈한다. 입장과 전망대 망원경 사용 모두 무료이며 월요일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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