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허니문은 간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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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2   |  발행일 2017-06-02 제23면   |  수정 2017-06-02
[조정래 칼럼] 허니문은 간다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면 권력을 사적인 목적으로 쓸 남용의 위험이 있다. 초기 높은 지지율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게 돼 있다.” 유시민 작가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문재인정부를 향해 이렇게 촌철살인을 날렸다. 노무현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고 문재인 대통령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사(公私)적 인연을 가진 그가 낸 경고음이기에 예사롭지 않다. 정치인에서 작가로 변신한 지금도 여전히 한발 앞서가는 그의 논평은 시의적절하다. 한마디로 막연하게나마 느끼지만 뭐라 표현하지 못하는 대중의 감을 꼭 집어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형국인가. 유 작가의 쓴소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정조준한 것은 아닐 터인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한 격이 됐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후보들의 위장전입 등 5대 비리가 갈 길 바쁜 문 대통령의 발목을 정면으로 걸었다. 여기서 주춤한 문 대통령은 정면돌파를 했어야 했다. 자신의 공약인 ‘5대 비리 관련자 고위공직 배제 원칙’이 어느 모로 보더라도 훼손되는 건 불변의 사실이었다.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 공약 따로 기준 따로, 적용을 위한 세부 기준 마련을 지시한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고 담대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해명에 앞서 이뤄진 임종석 비서실장의 사과와 양해 구함은 고압적이고 뻔뻔하기까지 하다.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후보자가 갖고 있는 자질과 능력이 관련 사실이 주는 사회적 상실감에 비춰 현저히 크다고 판단될 때는 관련 사실 공개와 함께 인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논리는 자기변호이자 ‘어거지를 써서라도 밀리지 않겠다’는 식 운동권 학생들의 순환논리의 오류를 연상케 한다. 해명이 아니라 변명이고, 논리가 아니고 궤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비국민적, 운동권적 계몽이자 훈화에 불과하다.

이명박근혜 정권과의 차별화로 고공의 지지율을 쌓아올리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알고 보니 ‘다르지 않다’는 평가를 듣는 순간 나락으로 추락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측근들이 뼛속에 새겨야 한다. 혹여 사과나 유감 표명을 생략한 게 높은 지지율에 취해 지리멸렬한 야권을 궤멸시키고 나아갈 수 있다는 지나친 오만함의 발로는 아닌지 늦기 전에 되돌아 보길 바란다. 벌써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나와서야 되겠는가. 박근혜정부에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인사청문회에서 추상 같은 잣대를 들이댔다.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조국 민정수석은 이명박정부 당시 장관 후보의 위장전입에 대해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이나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 파는 소리’ 등으로 맹비난한 칼럼을 기고한 바도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위장전입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자고 했는데,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선기준’을 들고 나왔다. 그 나물에 그 밥이고, 초록이 동색이다. ‘자기편 옹호하는 데도 지켜야 할 금칙(禁則)이 있다’고 비판했던 조 수석은 7년이 흐른 지금 정반대 입장이 됐다. 원칙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기가 훨씬 어렵다. 이러한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더라면, 역지사지의 정치력과 통치력을 발휘했더라면, 그래서 진솔한 사과나 유감 표명을 앞세웠더라면, 여야가 번갈아 가며 발목을 잡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전기도 마련하고 진정성도 인정받았을 터이다.

정권의 몸조심은 집권 초기 언론과 국민의 관용이 클 때부터 해야 한다. 원칙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고, 경고음 무시가 잦아지면 지지율 까먹기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 10명 중 7명은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 허니문은 봄날처럼 시나브로 지나가고, 민심은 사정없이 돌아선다. 집권 초기 국민들의 환호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역대 정권에서 모두 경험한 일이다. 적폐청산이든 ‘나라다운 나라’든, 그 성공은 역대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지금의 하명(下命)보다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담대하게 추진되지 않으면 기약하기 어렵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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