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2천년 역사도시 대구를 보여주고 싶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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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31   |  발행일 2017-05-31 제31면   |  수정 2017-05-31
[박재일 칼럼] 2천년 역사도시 대구를 보여주고 싶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세계 3대 스포츠 제전인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2011년)를 앞두고 대구를 알릴 브로슈어를 쓴다면, 그 첫 문장에 ‘삼성의 탄생지(birth place) 대구’라고 하면 좋겠다고 했다. 호평을 받았다. 삼성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수긍했다.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의 호암자전을 통해 대구의 삼성물산에서 시작됐다고 공식적으로 기록돼 있다. 작금의 국정농단에 얽힌 불운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초일류 IT기업이다. 시가 총액이 웬만한 국가의 한 해 국부에 버금가는 291조원이고, 연간 순이익은 40조원, 근 400억달러에 달한다.

첨단 네트워크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계는 언제부터인가 국가 간 대항을 넘어 도시 간 경쟁시대로 치닫고 있다. 세계 도시는 경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도시의 정체성과 브랜드를 앞세운다. 근저에는 문화와 역사성이 깔려 있다. 파리·런던·도쿄·보스턴에서 작금의 동유럽 도시를 상상하면 수긍이 간다. 만약 서울이 600년 조선왕조의 수도가 아니었다면, 호텔과 오피스 건물로 급조된 도시라면 허망했을 것이다.

삼성의 발상지도 틀린 슬로건은 아니지만, 허전하다. 삼성은 이제 대구의 유물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대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역사적 자부심을 갖고 외부에 응대해야 하는가.

대구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달성공원은 어린 시절 소풍 가는 곳이다. 나에게 덤이라면 중학생 때 난생처음 일제 가와사키 라켓을 들고 이곳 테니스장에서 운동한 적이 있다.

달성공원은 원래 공원이 아닌 토성(達城土城)이다. 동서 약 380m, 남북 470m, 둘레 길이 1천300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은 높은 곳은 7m에 달한다.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대구 시가지를 보면 달성은 신기할 정도로 딱 중심이다. 금호강 남쪽, 낙동강 동쪽의 이곳 분지는 수만 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해 왔다. 마침내 이곳은 흔히 말하는 초기 국가 형태의 공동체(달구벌국)가 자리했고, 토성은 그 역사적 증거다.

성(城)을 구축한다는 것은 주변의 적을 방어한다는 정치적 의미와 함께 문명화된 도시화의 시작을 뜻한다. 그 축조는 이르면 1세기, 늦어도 3세기(삼국사기)에는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달성에서부터 경산 영천 경주로 이어지는 신라벨트의 시작이다. 이렇게 오래된 도심 속 토성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고, 국내에는 없다.

달성토성은 그래서 역사적으로 달구벌로 불린 ‘대구란 도시의 원형(proto type)’이다. 달성을 비롯한 주변 내당동·비산동은 발굴만 하면 숱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엔 해자(垓子) 흔적까지 발견돼 흥미를 자아냈다. 제국주의 일본이 이곳에 신사(神社)를 세우고, 공원으로 치장하고, 순종황제를 불러 다녀가게 한 것도 그만큼 달성의 역사적 위엄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대구시는 근 20년 전부터 달성토성 복원을 구상해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역사 인식도, 의지도 부족했고, 현실적으로 달성공원 동물원(1970년 조성) 이전을 돌파하지 못했다. 한때 3대 문화권 국책사업으로 선정돼 국비 172억원을 지원받고도 반납하는 멍청한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대구가 드디어 달성을 복원할 모양이다. 수성구 대구대공원을 조성하면서 동물원을 이전한다. 시간표대로라면 2025년, 달성의 원형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래전부터 외국인에게 대구란 도시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삼성의 발상지에 더해 2천년 고대 도시란 점을 내세우며 이곳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따져보면 역사와 문명의 복원은 후손의 몫이다. IT, 로봇의 스마트 시티를 주창하는 대구이지만, 그 스마트에 역사 문화성이 부재하다면 명품도시가 되기는 어렵다.

도시의 정체성, 도시의 자부심은 역사와 문화적 공존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번에는 한 치 오차도 없이 복원해야 한다. 대구 정치인들도 괜히 정권을 뺏겼다고(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투덜대지만 말고, 발 디딘 도시의 내치에도 한번 관심을 기울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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