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작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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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30   |  발행일 2017-05-30 제31면   |  수정 2017-05-30
[CEO 칼럼] 작은 영웅들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지난주에 대신동, 성내동 마을어르신들과 함께 부산의 ‘산리협동조합’과 개금2동 마을지기관리소를 다녀왔다. 두 곳 모두 평지인 대구와 달리 한참을 올라가야 보이는 오래된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산리협동조합이 있는 산리마을회관은 건물꼭대기에 한 남자가 망원경을 보면서 동네를 꼼꼼히 훑어보는 모습의 조형물이 있는 건물이었다. 마을회관에는 주택유지관리 일을 하는 마을관리소, 동네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마을카페, 천일염을 포함해 로컬푸드 식재료를 파는 직거래매장, 물품보관소와 작은도서관, 마을공방으로서의 봉제공방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평범하지만 멋진 사무장이 있었다. 가정을 갖고 일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그 여성은 5년차 마을기업인 ‘산리협동조합’의 사무장으로, 마을의 여러 사업을 엮고, 다양한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한 가정의 엄마였다. 동네주민들과 일감도 찾고,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마을의 여론을 듣고 자신의 할 일을 찾아가는 그 사무장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단다. 필요하다 생각하면 배우러 갔고, 지금도 ‘모르는 것 천지’지만, 문제가 터지는 곳마다 다니다보니, 이제는 갈등관리전문가라고 여기저기서 불러준단다. 작더라도 구청이나 시청에서 사업비를 따와 동네축제도 하고,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고, 마을사와 마을의 인물도 발굴하면서 마을기업도 운영해 동네분들이 ‘떳떳하게’ 용돈을 벌어간단다. 뿐만 아니라 이 동네의 우산수리, 헌옷수선, 마을공구 빌리기는 모두 2천원으로 다 해결한다. 사람을 엮고 자원을 엮는 발빠른 ‘작은 영웅’이다.

개금2동의 ‘마을기지사무소’에도 구성지게 부산사투리를 사용하는 할머니가 계셨다. 이 할머니가 주축이 되어 만든 이웃사랑회는 고집스럽게 ‘남 탓 안하고 내 즐거움으로 봉사’하는 단체이다. 개금2동은 40년 이상 된 토박이 1세대와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랫동네 3세대가 모여 사는 동네로, 노후화가 심각하고 세대수가 많아 택배도 어려운 지역이라고 한다. 가난한 노인들이 많고, 빈집증가로 지역슬럼화가 진행되고, 아동과 청소년들이 보호자의 부재로 위험에 노출된 지역이었다. 그래도 마을애정이 깊은 어르신 토박이들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고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 할머니도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일단 집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택배도 전달 안되는 처지라 먼저 문패달기운동을 하기 시작, 오물냄새와 쓰레기가 모이는 곳에 화분도 내놓고, 벽화도 그리고, 화단도 만들었다. 모이다보니 ‘뭔가’ 같이 할 거리를 ‘더’ 만들려고 쿠키공방을 만들고, 2012년부터 지금까지 몇 번의 ‘역량강화 아카데미’를 거치면서 6명의 어르신이 이젠 제법 상품성있는 쿠키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와 할머니를 따르는 친구분들의 오래된 고집스러운 봉사로 이젠 ‘맥가이버’같은 만능수리꾼도 있고, 마을지킴이도 있는 동네로 바뀌었다. 마을지기사무소에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작은 도서관과 봉사자들, 만물수리공 1명, 마을지기 1명을 배치해 같이 일한다. 막상 일을 해보니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 마을작업장인 쿠키공장의 경우 제과점 운영청년들이 운영노하우를, 인쇄소 운영아저씨가 포장박스 제작아이디어를 주었단다. 처음 시작한 한 활동가의 헌신과 이를 좇는 마음좋은 사람들, 그리고 기회를 보며 도와주는 누군가들, 이런 마음맞는 사람들이 모여 버텨내면서 이어온 전통이, 가난하지만 서로를 돌보는 따스한 지역을 만들었다.

가난한 동네의 ‘홍반장’같은 이분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과 우리 삶의 근저에 깔려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때로는 조그마한 사랑, 손톱만한 인정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며, 사는 보람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제 길을 찾아왔고 또 앞으로도 제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 길에의 확신을 심어주는 그 ‘작은 영웅들’의 고민과 열정을 느끼면서, 나오는 길에 다시 한 번 그분들의 건투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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