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광대 고속철도’로 불리지 않으려면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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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30   |  발행일 2017-05-30 제30면   |  수정 2017-05-30
광주∼대구 고속도로 명칭
달빛고속도로로 안바꾸면
광주∼대구 고속철도
광대고속철도로 불릴 수도
광대가 아닌 달빛이 정답
[화요진단] ‘광대 고속철도’로 불리지 않으려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업이자 영·호남지역 숙원사업인 대구~광주 간 달빛고속철도 건설 추진을 위한 협의체가 다음 달 12일 출범한다. 총연장 191㎞, 사업비 4조9천900여억원이 소요되는 이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대구~광주 간 소요시간이 1시간 이내로 앞당겨진다. 달빛동맹으로 우의를 다져온 영·호남을 상징하는 양 도시가 실질적으로 가까운 이웃이 되는 셈이다. 협의체는 이 사업을 2020년 예정된 3차 국가철도망구축 계획 수정 작업 때 반영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분명 대단히 반길 일이다. 그런데 찜찜한 구석이 있다. 2015년 12월 4차로로 확장 개통된 88고속도로 명칭에 대한 트라우마 탓이다. 당시 대구시와 광주시는 물론, 양 지역 시민단체에서도 88고속도로의 명칭을 ‘달빛(대구의 옛 이름 달구벌+광주의 옛 이름 빛고을)고속도로’로 해 줄 것을 국토부에 요구했다. 양 도시가 달빛동맹까지 맺고 있던 터라 부르기도 친근해 당연히 달빛고속도로로 명명될 것으로 알았다. 국토부는 양 지역 주민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악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광대고속도로’를 탄생시킨 것이다. 국토부는 고속도로 명칭은 기종점 지자체 명칭을 사용한다고 훈령에 명시돼 있다는 이유를 들어 광주~대구고속도로로 결정했다. 달빛은 의미가 추상적이라 고속도로 명칭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원칙만 앞세운 채 정작 이 도로를 이용할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했다. 국토부의 원칙을 적용하면 대구~춘천 간 중앙고속도로는 대구~춘천고속도로가 돼야 한다. 원칙도 없고 융통성마저 발휘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이후 양 지역 광역의회와 시민단체 중심으로 수차례에 걸쳐 광대고속도로의 명칭 변경을 요구했지만, 국토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달빛동맹 민관협력위원회는 광대고속도로의 명칭을 달빛고속도로로 변경해 줄 것을 재건의하기로 결의했다. 최광교 대구시의원도 “국민대통합이라는 새 정부의 국정기조에 맞게 광주~대구고속도로의 명칭을 조속히 개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글학회에서조차 명칭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명칭 변경 요구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국토부의 입장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이러다 대구~광주 간 고속철도가 ‘광대고속철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광대고속도로가 달빛고속도로로 바뀌지 않는 한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속도로 명칭을 바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남도지사가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 후보로 지명되고, 김부겸 국회의원이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리 후보는 재직시절 영·호남 교류에 앞장서온 만큼 이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 의원은 광대고속도로는 양 지역의 화합과 상생을 상징하는 달빛고속도로로 명명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총리와 실세 장관이 같은 입장을 밝힌다면 고속도로 명칭 변경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대구·광주지역 국회의원 누구도 광대고속도로의 명칭 변경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고속도로 명칭 변경에 대한 총리 후보자의 의견을 묻고, 총리 후보자가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했으면 이른 시일 내에 달빛고속도로로 명칭이 바뀔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어령 교수는 이름 하나로도 꿈을 담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름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영경 아름다운길이름연대 대표는 동서 화합을 상징하는 차원에서 이 고속도로를 넬슨만델라고속도로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세계적인 평화와 화합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이름을 붙이자는 것이다. 다소 생뚱맞아 보이지만 의미는 있어 보인다.

놀림당하는 이름은 누구도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하물며 동서 화합의 상징인 대구와 광주를 잇는 도로 이름이 더 이상 놀림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국토부는 지금이라도 양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광대’가 아니라 ‘달빛’이 맞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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