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보수’, 이름이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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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9   |  발행일 2017-05-29 제30면   |  수정 2017-05-29
문재인정부에 거는 기대감
보수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기울어진 운동장 만들지만
당권노린 이전투구에 함몰
보수의 앞날은 어둡기만해
20170529

한국갤럽의 5월 넷째주(23~25일) 여론조사 결과에 보수는 충격을 받아야 한다. 정당지지도에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51%를 기록했다(이하 갤럽 조사 기준·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계열 정당으로선 사상 첫 50%대 돌파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5월 셋째주(16~18일)의 48%보다 3%포인트 올랐다. 역대 정당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김영삼정부 출범 직후의 민자당 기록(59%)을 조만간 갈아치울 기세다. 반면 보수정당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정통보수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은 8%로 1주 전과 같다.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바른정당은 전주보다 1%포인트 하락한 6%를 기록했다. 국민의당(7%), 정의당(6%)과 고만고만하다. 두 보수정당 지지율을 합쳐도 민주당의 3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친다.

보수의 심장이라던 대구·경북조차 형편은 별로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41%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당 16%, 바른정당 12%를 받았다. 전주에 비해 민주당은 7%포인트가 치솟은 반면, 한국당은 5%, 바른정당은 4%포인트 내려앉았다. 한국당만 놓고 보면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지 두 주 만에 대선 때 홍준표 후보가 전국에서 받은 표(24%)의 3분의 2를 까먹었다. 대구·경북 역시 홍준표 후보가 47.1%의 지지를 받았으니 3분의 1 타작 난 셈이다. 원인은 두 갈래로 짚어볼 수 있다. 하나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여당 지지로 표출된 측면이다. 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향후 5년간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88%에 달했고, ‘잘 못할 것’이라고 내다본 의견은 6%에 그쳤다. 대구·경북에서도 ‘잘할 것’ 82%, ‘잘 못할 것’ 10%였다. 특히 이념성향별로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의 73%도 ‘잘할 것’이라고 했다.

보수 유권자도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 문재인정부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있음이 읽힌다. 하지만 그 이면엔 보수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 가뜩이나 수갑을 차고 법정에 나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데, 동반책임을 지겠다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행동으로 대선패배에 책임을 진 인물은 사무총장 자리를 내놓은 이철우 의원이 유일하다. 박근혜정부 실패와 정권을 내준 결과에 대오각성해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껍데기만 남은 낡은 유산(遺産)이나마 서로 차지하겠다고 난리다. 당권을 놓고 막말을 주고받으며 진흙탕 싸움만 벌인다. 계파투쟁에 매몰된 결과로 이미 공멸(共滅)을 경험했으면서도 다시 당내에서 ‘친박’ ‘비박’이란 용어가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원내의석 299석 중 107석을 가진 제1야당이면서도 새 정부 출범 초기의 균형과 견제 역할에는 손을 놓다시피 한다.

더 큰 충격을 받아야 할 건 암울한 ‘보수의 내일’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다. 지금이라도 보수진영을 추스르고 내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나아가 차기 대선 채비를 하려면 뚜렷한 리더가 있어야 한다. 당내에서 7월3일 전당대회에 나설 당권주자는 자천타천 차고 넘치지만 국민의 눈에 확 띄는 리더는 사실상 없다. 황교안·김황식 전 국무총리,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같은 정치권 밖의 인물들에게도 눈을 돌려보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들이 진흙탕이 돼버린 한국당에 발을 담글지도 의문이다. 새로운 리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렇게 보수의 앞길이 꽉 막혀 있음에도 보수정치인들은 모르거나 모른 체한다. 이념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옹기종기 모여서라도 운동장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을 궁리만 한다. ‘보수’라는 이름이 부끄럽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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