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나는 타자(他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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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9 07:46  |  수정 2017-05-29 07:46  |  발행일 2017-05-29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나는 타자(他者)다!

‘아무 일도 없다, 그냥 하나의 눈짓/ 태양의 눈짓 하나, 움직임조차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런 거/ 구제할 길은 없다. 시간은 뒷걸음치지 않는다/ 죽는 자는 스스로의 죽음 속에 묶여/다시 달리 죽을 순 없다/ 스스로의 모습 속에 못 박혀 다시 어쩔 도리가 없다/ 그 고독으로부터, 그 죽음으로부터/ 별 수 없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우리를 지켜볼 뿐/ 그의 죽음은 이제 그의 삶의 동상/ 거기 항상 있으면서 항상 있지 않은/ 거기 일 분 일 분은 이제 영원히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도깨비 왕이 너의 맥박을 점지한다/ 그리고 너의 마지막 몸짓, 너의 딱딱한 가면은/ 시시로 바뀌는 너의 얼굴 위에서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삶의 기념비/ 우리 것이 아닌 우리가 살지 않는 남의 삶//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인 일이 있는가/ 언제 우리는 정말 우리인가/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되어 본 적이 없다/ 우리 혼자는 현기증이나 공허밖에는/ 거울에 비친 찌그러진 얼굴이나 공포와 구토밖에는/ 인생은 우리의 것이어 본 일이 없다, 그건 남의 것/ 삶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삶이고- 남을 위해 태양으로 빚은 빵/ 우리 모두 남인 우리라는 존재/ 내가 존재할 때 나는 남이다, 나의 행동은/ 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나는 남이 되어야 한다/ 내게서 떠나와 남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남들이란 결국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 존재하지 않는 것/ 그 남들이 내게 나의 존재를 충만시켜 준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 항상 우리다/ 삶은 항상 다른 것, 항상 거기 있는 것, 멀리 멀리 있는 것/ 너를 떠나 나를 떠나 항상 지평선으로 남아 있는 것/ 우리의 삶을 앗아가고 우리를 남으로 남겨놓는 삶/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존재하고 싶은 허기증, 오 죽음이여, 우리 모두의 빵이여.’(옥타비오 파스 ‘태양의 돌’)

얼마 전 멕시코를 다녀왔습니다. 멕시코 대표 화가 프리다 칼로의 푸른 집과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들을 곳곳에서 보다 시간에 쫓겨 채 보지 못한 로댕의 조각품 300여 점을 좌판 상품처럼 빼곡히 세워 둔 소우마야미술관 3층을 전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멕시코 기행의 여운으로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1990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태양의 돌’을 꺼내 읽습니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나는 남이 되어야 한다.’ 나 또한 타자(他者)라는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옥타비오 파스는 시로 쓴 듯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모두가/ 삶이고- 남을 위해 태양으로 빚은 빵’ 이것이 문학의 근간을 이룰 때 정말 행복한 글쓰기가 구현되는 것 아닐까요.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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