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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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9 07:33  |  수정 2017-05-30 11:40  |  발행일 2017-05-29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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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금발의 원어민 영어교사였다. 40대 초반의 미혼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다. 예민하고 여린 감성의 소유자로 한국 학교생활의 많은 것이 신기해 “와우!” “오 마이 갓!”을 자주 외쳤다. 원어민 보조교사는 한 반에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교사와 코티칭을 한다. 그날은 우리나라에 와서 맞은 둘째 주, 중2 어느 반 수업이었다. “선생님, 시언이가 준비해 왔는데요.” 영어 선생님이 의아한 눈으로 “뭘?”이라고 했고 원어민교사는 그냥 어깨를 추어올렸다. 리코더를 든 시언이는 조용히 걸어 나와 교탁 앞에서 아름다운 연주를 했고, 학생들은 곡을 잘 몰랐지만 시언이의 현란한 연주 실력에 압도되어 연주를 들었다.

그런데 원어민교사의 반응이 놀라웠다. 입을 다물지 못했고 휘둥그레진 녹색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아메리칸 스타일의 몸짓으로 “원더풀” “생큐”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어 고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고 싶다고 수업을 마치고 한 번만 더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를 안 건 몇 분 뒤였다. 그 곡은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가였다. 바로 앞 주 첫 영어시간, 자기소개 시간에 몇몇 학생들의 자기소개가 있었고, 시언이는 우리학교 최고의 음악가라고 소개했더니 다음에 자신에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달라고 지나가는 말로 응대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시언이는 수만 리를 날아온 원어민선생님을 위하여 인터넷을 통하여 그 곡을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연습하여 영어회화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어떻게 그 곡을 선택할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연습했을까. 시언이의 연주는 오래도록 우리 귓가에 남았다. 진정한 소통의 방법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전에 함께 근무했던 50대 중반의 남선생님의 이야기다. 젊은 날 특유의 의리와 열정적인 수업으로 학생들을 사로잡았지만 이제는 중학생, 특히 여학생과의 소통은 참 힘들다. 단호하게 지도하는 것은 윽박지르는 것이 되고, 부드럽게 지도하면 “왜 저만 갖고 그러세요?”라고 쏘아 붙인다. 위험한 장난으로 자칫 부상의 위험이 따를 때 가장 무섭게 야단을 친다. 그런데 때리지도 않으면서 험한 표정만으로 나무라면 학생들은 선생님을 무서워하기는커녕 표정과 말투를 너무 코믹하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 말투를 따라하고 끼리끼리 히죽거린다. 손주 같은 놈들이 허파를 뒤집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날은 또래 동료도 별로 없는 교무실에서 명퇴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던 선생님이 자율동아리 지도를 하면서 되살아났다. 몇몇 거친 놈들을 설득하여 삼겹살도 먹고 연탄봉사도 하고 연습한 종목으로 대회에도 나가면서 뺀질이들이 제자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 대회를 앞두고 실전에 대비한 연습에 돌입하면서 긴장을 공유하고 그 살 떨리는 대회를 치르면서 아이들은 선생님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당당한 걸음걸이를 찾아 주었다. 학생들이 기성세대와 이야기하기 싫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충고나 훈계 ‘내용’ 자체가 아니고 가르치는 우리의 훈육 ‘방식’이 구식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 학교는 ‘배움이 있는 협동수업’을 위해 모두가 열심이다. 오늘도 선생님들은 기꺼이 그들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좋은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이 많이 산다.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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