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네루다·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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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6   |  발행일 2017-05-26 제42면   |  수정 2017-05-26
하나 그리고 둘

네루다
비밀경찰의 눈으로 본 도망자 詩人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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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유명한 시인이자 혁명가가 망명한다. 배운 것 없는 우편배달부 청년이 그와 친분을 쌓으며 시와 사랑을 배워나간다. 1994년 작, ‘일 포스티노’(감독 마이클 래드포드)는 최근 한국에도 재개봉되었을 정도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 영화에 등장한 ‘파블로 네루다’는 실존 인물이며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칠레의 전설적인 시인이다. ‘일 포스티노’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의 우정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네루다’(감독 파블로 라라인)는 그를 쫓는 비밀경찰 ‘오스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네루다(루이스 그네코) 사이에 오가는 갈등과 교감을 초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 포스티노’와 대비되는 분위기가 영화를 인상적으로 만든다. 각본, 캐릭터, 주제, 이미지 모두 시적이면서 강렬하다.


네루다의 시를 바탕으로 그에 대한 독창적 재해석
파블로 라라인 감독 신작…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주연
쫓고 쫓기는 이의 교감 그린 각본과 내레이션 눈길



아버지가 위대한 경찰이었다고 믿는 창녀의 아들 오스카는 자신도 인정 받는 경찰이 되기 위해 네루다를 추적한다. 그는 독수리 같은 눈으로 네루다가 지나간 자리를 꼼꼼하게 훑어 나간다. 그의 가정사적 콤플렉스는 네루다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표출되는 한편, 자신을 향한 비정상적인 나르시시즘으로 발전한다. 네루다는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예술가로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사회적으로 금기된 행위를 통해 해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두 캐릭터 모두 흥미롭지만 영화에서 더욱 강조되어 있는 것은 오스카와 네루다의 관계, 즉 쫓고 쫓기는 이들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이다.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는 네루다를 향한 오스카의 의지, 생각, 감정 등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바뀌어 나간다. 자신의 손으로 네루다를 체포하고 말겠다는 오스카의 뒤틀린 욕망은 점차 이 시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뀌어 나간다. 네루다는 보란 듯 오스카에게 자신의 책을 남기며 거처를 옮기는데, 오스카는 그 책들을 읽으며 네루다의 사상에 이끌리게 된다. 이러한 오스카의 심리적 동요는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네루다의 시가 가진 힘으로 인해 설득력을 얻는다. 네루다와 동료들이 그의 시를 낭독하고 복창할 때마다 작가의 카리스마와 혁명의 힘찬 기운이 전해진다. 그는 모두가 평등해지는 세상을 진심으로 바라고 꿈꾸었던 인물로, 드물게 자신의 재능과 명성을 그 목표를 위해 사용한 위인이었다.

그러나 네루다에 대한 자각이 있은 후에도 오스카는 멈추지 않고 그를 뒤쫓는다. 결국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비겁한 도망자가 아니라 명분을 잃어버린 채 관성으로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실체다. 네루다 또한 자기를 그토록 괴롭혀왔던 오스카를 보면서 그의 집요함과 비판적 시선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네루다’는 시인 네루다의 이야기면서 각자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서로가 필요했던 네루다와 오스카의 이야기이고, 나아가 관객들 모두의 이야기로 파급된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네루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의 시에서 얻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해석된 인물을 만들어내길 원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네루다를 닮았다기보다 그의 시를 더 닮아 있다. 종종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오스카의 내레이션, 극도의 혼란에 시달리는 네루다가 여자들과 유희를 즐기는 장면, 흰 눈밭에서 펼쳐지는 오스카의 추격 장면 등에서 영화는 자유롭게 꿈과 현실을 오간다. 전기영화로서는 드문 시도를 보여주는 세련되고 독특한 감각의 영화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07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日 애니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40년 前 첫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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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는 누수(漏水)가 없다. 철학적이며, 교훈과 감동이 있고, 무엇보다 흥미진진하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필적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재패니메이션)의 매력과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가 40여 년 전에 만든 첫 장편 애니메이션에도 그의 재능과 장기가 유감 없이 발휘되어 있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은 조금 늦게 국내 극장가에 찾아온 선물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하 ‘루팡 3세’)은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루팡’을 원작으로 한 만화 ‘루팡 3세’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으로 특유의 아날로그적 작화가 친근감을 준다. 속도감 있는 액션신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권선징악 주제도 진부하지 않게 녹아들어 있어 가족들이 함께 즐기기에 무리가 없다.


‘괴도 루팡’ 원작으로 한 만화 ‘루팡 3세’를 애니로
특유의 아날로그적 작화와 속도감 있는 액션신 눈길



‘루팡’은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여인 ‘클라리스’가 위조지폐의 소굴이 된 성에 갇히게 되자 친구들과 함께 그녀를 구출하러 나선다. 결혼을 통해 클라리스 가문의 힘을 갖고자 하는 늙은 백작이 엄청난 군대로 그들을 방해하지만 루팡 일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상의 독립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판타지적 요소들이 다분한 반면 인터폴, 위조지폐, 국제회의 등 현실에 존재하는 기관과 이슈들이 함께 등장해 몰입감을 더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원작의 이국적인 정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자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 이질감 없이 전달되도록 표현하고 봉합한 부분이다. 이렇듯 아주 특별하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음 작품들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인데 바로 이것이 4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루팡 3세’가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소년 코난’처럼 중력을 무시하고 건물의 외벽을 수직으로 내달리는 루팡의 모습에서 무한한 자유와 해방감이 전해져오는 유쾌한 작품이다. (장르: 애니메이션,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9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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