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계단이 없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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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4 07:48  |  수정 2017-05-24 07:48  |  발행일 2017-05-24 제23면
[문화산책] 계단이 없는 집
김현진

현재 가창에 공사 중인 주택은 다락이 아주 넓은 단층집이다. 다섯 살 아이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아파트에서 나와 자연 속에 살기 원했던 어느 가족의 집이다. 건축법에서 다락은 건물의 층수로 산입되지 않으므로, 층고가 높은 이 집을 우리는 이층집이라 부르지 않는다. 얼마 전 상량식을 하고 지붕을 덮었지만 아직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만들어지지 않아,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가설 비계를 마치 사다리처럼 타고 1층과 다락을 오르내린다.

한 층 한 층 순서대로 올라가는 건물의 공사 과정에서 계단은 나중에 만들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이렇게 높은 곳의 작업을 위해 세워둔 비계나 자투리 각재 혹은 다 쓴 거푸집 몇 개를 이어 만든 임시 계단을 이용한다. 높은 곳에 대한 무서움이 많은 나는 어서 제대로 된 계단이 만들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제야 집의 모든 공간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미리 계획해두었던 지점에서 특별한 경치와 바람을 편안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이가 다른 두 공간을 사람이 오르내리도록 연결하는 것을 계단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대부분 단층집이나 아파트에 살아왔기 때문에 계단에 대한 서정(抒情)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계단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할 때 건축가로서 공감의 벽을 느낀다. 또한 계단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데다 오르내리는 일이 번거로워, 공간과 시간을 여기서 낭비한다거나 아주 위험하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기술자들에게도 계단의 건축은 섬세한 설계와 노련한 시공을 요하므로 여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어 단순한 형태가 선호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주변에서 아름다운 계단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난간동자, 엄지기둥, 난간 이음, 손 스침 등 여러 부위의 이름들도 낯설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집, 도시의 안팎에는 다양한 계단들이 꼭 필요하다. 천천히 오르내리거나 도중에 멈춰 사람과 경치를 만나게 하는 곳, 우리에게 사색과 기대를 가능하게 하는 곳, 스스로를 보호하고 조심성을 키우는 곳, 고독과 동반을 배우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늘 평평하지 않으며, 인생살이에도 고저가 있다. 오르내림의 노력과 그 과정에 만나는 휴식과 깨침이 우리를 살게 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계단은 시간의 의미와 관계의 고마움을 가르쳐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한다.

어릴 때 집과 동네와 같은 공간의 추억은 아주 특별하게 한 사람에 새겨지고 그의 삶을 풍부하게 한다. 이 집의 계단을 무수히 오르내리며 아이는 자랄 것이며, 공간과 시간은 어마어마한 추억으로 아이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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