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귀촌 주부가 차리는 사랑의 경로 밥상

  • 글·사진=조경희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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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4   |  발행일 2017-05-24 제14면   |  수정 2017-05-24
칠곡 석적읍 신성해·구귀련씨
금요일마다 마을 어르신 대접
이진수 이장 “좋은 이웃 생겨”
두 귀촌 주부가 차리는 사랑의 경로 밥상
매주 금요일 칠곡군 석적읍 도개2리 비래골 마을 어르신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신성해(맨 위 왼쪽)·구귀련씨.

“다음엔 뭐 드시고 싶으세요?”

“둘이서 해주는 건 다 맛있재. 나물반찬만 줘도 괜찮은데 고기반찬도 주고…. 이 동네 복덩이야.”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셋인 김순연 할머니가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비우면서 식탁 끝 쪽에서 밥상 시중을 들고 있던 초로의 두 여성에게 더없이 환한 미소를 보냈다. 김 할머니를 포함해 칠곡군 석적읍 도개2리(이장 이진수) 비래골의 어르신들은 매주 금요일이면 신성해(61)·구귀련씨(64)가 차린 밥상을 받는다. 8년 전 귀촌한 신씨와 구씨 덕분에 이 동네 어르신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난다.

도개2리에는 경로당이 없다. 다른 동네에는 경로당이 있어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지만, 비래골 어르신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마을회관에 가려면 찻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연로한 어르신들로서는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뒷산인 유학산을 거쳐 동네 쪽으로 전주가 설치되면서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마을 보상금’이 나왔다. 구씨 부부와 신씨 부부는 보상금으로 경로당을 대신할 컨테이너 설치를 건의했다. 마침 동네 이장 이진수씨가 선뜻 자신의 밭을 내놓아 그곳에 ‘컨테이너 경로당’을 설치했다. 그리고 신씨와 구씨는 금요일마다 어르신의 ‘행복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장을 보고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한다.

동네 어르신들도 활기를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모이다 보니 서로 안부를 묻고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신씨와 구씨는 편찮은 어르신이 생기면 죽을 끓여 어르신 집으로 달려간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을 대신해 건강을 돌봐주기 때문에 이들은 자식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특히 비래골 어르신은 생일에 생일잔치를 한다. 바쁜 일상에 요즘 대부분의 부모 생일잔치가 주말로 당겨지거나 늦춰지는 것과 달리 이 마을 어르신은 제날짜에 생일상을 받는다. 신씨와 구씨 덕분이다. 전을 부치고 잡채를 만들고 수육과 케이크를 준비해서 생일상을 마련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하해 준다. 사진을 찍어 생일 맞은 어르신의 자식에게도 보낸다. 자식은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신씨와 구씨가 해줘 고맙다며 생일상 값을 보내준다.

신씨와 구씨의 남편은 친구지간이다. 신씨 부부와 구씨 부부는 이곳에 귀촌하면서 마을에 동화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땅을 마련하고 집을 짓기 전부터 하우스를 지어 놓고 마을 어르신들께 닭을 삶아 대접하는 등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낯선 사람이 마을 안으로 집을 지어 들어오면 당연히 경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이들 부부의 마음 씀씀이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 신씨 부부와 구씨 부부 역시 마을 어르신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문도 열고 마음의 문도 더욱 활짝 열었다.

신씨와 구씨는 “도시에서는 일부러 시간 내 봉사하러도 간다. 마을 어르신에게 식사 봉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나물반찬이든 고기반찬이든 맛나게 드시니 대접하는 우리가 더 기쁘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 따뜻한 밥은 얼마든지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이진수 이장은 “어딜 가나 텃세가 있기 마련이다. 시골은 문만 열면 서로 봐야 하니까 혼자만 살 수 없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노인들이 많은 동네라 젊은 사람이 들어와 이렇게 밥상을 차려주니 동네로서는 좋은 거다. 좋은 이웃이 새로 생겨 우리가 더 고맙다”고 했다.

글·사진=조경희 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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