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대구 범물동 지부자씨

  • 최보규
  • |
  • 입력 2017-05-23  |  수정 2017-05-23 07:37  |  발행일 2017-05-23 제29면
31년간 3만시간 헌신…적십자 선정 3代 봉사 명문가
두 딸·외손자까지 봉사회 가입 “식구끼리 같은 취미 생긴 거죠”
200만원상당 가족여행권 상품 “더 어려운 사람에 쓰이길” 반환
[이 사람] 대구 범물동 지부자씨
대한적십자사 2017 3대 봉사명문 표창을 받은 지부자씨와 일정이 빽빽히 메모된 그의 수첩(작은 사진).

“나를 다시 살려주신다면 이웃과 나누며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덤으로 목숨 한 번 더 얻은 거니까 의미있는 일 해야죠.”

지부자 적십자 봉사원(73·대구시 범물동)의 하루는 봉사활동으로 시작해 봉사활동으로 끝난다. 지씨가 매일 갖고 다니는 연두색 수첩에는 봉사활동 일정이 매일 2~4개씩 빼곡히 적혀있다. 인터뷰를 한 지난 11일에도 노인복지관 배식, 도시락 배달 등이 예정돼 있었다.

지씨가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혹독한 병치레 끝에 ‘제2의 인생’을 살면서다. 기관지확장증을 앓던 지씨는 40대 중반 인생의 큰 고비와 맞닥뜨렸다.

“기관지에서 자꾸 피가 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말라가기만 했어요. 치료법도 마땅치 않아 말 그대로 죽을 고비까지 갔던 셈이죠.”

더욱이 병원 입원 중 결핵까지 감염됐다. 병원에 머문 시간만 1년. 몸은 혼자 일어서기도 힘들 정도로 약해졌다.

“그때 기도하면서 ‘다시 살려준다면 이웃과 나누며 살겠다’고 약속했어요. 병원에 있으면서 주변의 소중함도 많이 알게 됐고요.”

이 일을 계기로 지씨는 ‘봉사활동 전도사’로 나서기 시작했다. 시작은 동네 이웃들의 어려움을 돕는 정도의 소소한 활동이었다. 그러다 1986년 같은 동네에 살던 한 적십자 봉사자와 함께 현장에 다니며 적십자 봉사원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동네 주민들을 여럿 모아 수성구적십자사지회를 꾸리기도 했다. 마을 단위 봉사활동 모임이 구성된 것이다.

이렇게 쌓은 봉사 경력은 햇수로 31년. 봉사시간으로 치면 3만 시간을 넘는다. 그 사이 지씨의 손길은 학교, 요양원, 복지관, 국군병원, 수해 현장 등 지역 곳곳에 미쳤다.

“어렵게 살던 시절 공고·여상에 다니는 아이들이 낮에 직장 다니고 밤에 공부했거든요. 그 애들 위해 학교 가서 라면도 삶아주고, 국군병원에서는 환자들 병원복 만들기도 하고, 김장 봉사, 원폭피해 어르신 경로잔치….” 지씨는 자신의 손길이 닿은 곳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지씨의 ‘봉사활동 인생’은 고스란히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애들이 어릴 때부터 손잡고 봉사하는 곳에 데려갔어요. 결연을 한 가정 어르신 생신잔치할 때도 자주 데려가니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접하게 된 것 같아요. 외손자가 생긴 뒤에는 등에 업고 봉사활동하러 가고 그랬어요.”(웃음)

그 영향으로 두 딸 김수정씨(44)와 수희씨(38)가 2006년 적십자사 봉사회에 가입했다. 외손자 명건우씨(20)도 2012년 봉사회에 몸을 담았다. 이들 가족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봉사정신을 인정받아 최근 대한적십자사가 매년 한 가정씩 선발하는 ‘3대 봉사 명문가’로 뽑히기도 했다. 당시 표창장과 함께 받은 200만원 상당의 가족여행상품권은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 돌려주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전했다.

지씨는 ‘가족 봉사활동’의 매력을 설명할 때면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식구끼리 같은 취미가 생긴거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잖아요. 엄마가 하는 활동을 딸이 경험하면서 ‘엄마가 뜻깊은 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엄마는 동참하는 자식들한테 고마움을 느끼고…, 좋은 건 나누면 더 커진다고 하잖아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들부터 보람을 나누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는 끝으로 “봉사활동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또 다른 취미 하나 생긴다고 보면 돼요. 봉사하러 가면 내가 모르던 반찬 만드는 법, 일하는 요령 같은 것도 배울 수 있고, 봉사자들과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일이 힘든 줄도 몰라요. 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주변 봉사원 따라 구경 한번 가 보세요.”

글·사진=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AI 활용, 디지털 아티스트 진수지

더보기 >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