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에 옷 젖듯…서로의 가족이 되어가는 두 사람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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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3   |  발행일 2017-05-23 제24면   |  수정 2017-05-23
■ 리뷰 연극 ‘늙은 자전거’
할배 앞에 갑자기 나타난 손자
잔잔하고 따뜻한 가족애 그려
봉산문화회관 28일까지 공연
가랑비에 옷 젖듯…서로의 가족이 되어가는 두 사람
극단 구리거울의 ‘한국연극의 힘 시리즈’의 첫 작품인 ‘늙은 자전거’의 한 장면. <극단 구리거울 제공>

가족은 연극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 중 하나다. 전혀 가족 관계가 아닌 이들이 가족이 되거나 혈육이지만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기도 한다.

극단 구리거울은 ‘한국연극의 힘 시리즈’의 첫 공연으로 연극 ‘늙은 자전거’를 대구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 라온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 또한 가족이야기다. ‘바냐 아저씨’ ‘햄릿’과 같은 해외 고전을 주로 소개해온 극단 구리거울이 선보이는 한국 연극이다. 이 작품은 방물장수 동만과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손자 풍도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함께 지낸 적이 없는 가족이 갑자기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영화 ‘집으로’를 떠올리게 한다. 그 영화에서는 7세 손자가 외할머니를 괴롭히지만, ‘늙은 자전거’에서는 반대로 할아버지인 동만이 손자를 극구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작품은 로드무비, 버디 무비의 성격을 띤다. 공연 팸플릿에서도 김미정 연출가는 “길 위에서 그리고 길동무가 함께하면서 배우는 인생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공연에서도 동만과 풍도는 할아버지와 손자라기보다는 사뭇 다른 관계로 그려진다. 동만이 풍도에게 흰 운동화를 사주고, 버들강아지풀로 장난을 치는 모습은 마치 친구 같다.

복남과 미자 커플이 등장해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이 두 역할은 작품에서 코믹한 연기로 좌중을 사로잡는 ‘감초’ 역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억지로 웃음을 끌어내기보다는 소소하면서도 잔잔한 웃음을 준다. 공연이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복남과 미자 또한 동만과 풍도의 가족처럼 보여진다. 특히 풍도를 챙기는 미자의 모습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는 비교적 단순하다. 무대에서 보이는 건 동만의 자전거, 복남의 리어카, 이정표 정도다.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반면 동만과 풍도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단조롭게 느껴졌다.

‘늙은 자전거’는 눈물을 왈칵 쏟게 하거나 배우의 대사 한마디마다 웃음을 빵빵 터트리게 하는 연극은 아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가족이 되어가는 동만과 풍도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공연은 28일까지 이어진다. 전석 3만원. 010-2902-2303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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