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순의 정신세계] 마음의 병 진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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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3 07:53  |  수정 2017-05-23 07:53  |  발행일 2017-05-23 제19면
[곽호순의 정신세계] 마음의 병 진단하기
<곽호순병원 원장>

마음의 병을 진단하는 일은 참 어렵다.

객관적 기준이나 명확한 증거 등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의 병도 진단을 해 평가하고 비슷한 성격의 증상끼리 분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진단 분류를 통해 치료 방법도 개발하고 예후도 판단하며 통계적인 접근도 하고 예방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마음의 병은 그 원인에 대한 분류를 할 수 없고 그 증상에 대한 분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지금 학술적으로 사용하는 진단 분류 체계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이라는 기준이다. 이 진단 기준은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이 기준이 5판까지 나오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는 학술적으로는 이 기준을 사용해 마음의 병을 진단한다.

이 진단 기준은 마음의 병을 진단 내리기 위한 약속을 정해 놓은 것이다. 이 약속 기준에 의하지 않고 함부로 진단을 내리거나 아무렇게나 추정하거나 과장하거나 축소해 진단들을 마구 내린다면 마음의 병을 분류하는 데 일대 큰 혼란이 있게 된다. 그런 문제를 막고자 이런 진단 기준을 만든 것이다.

한두 번 혼란스러운 말을 한다고, 혹은 사실이 아닌 것을 일시적으로 믿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뇌를 다쳐 일시적인 환청이나 환시가 있다고 덜컥 ‘조현병’(과거 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내리면 안 된다.

DSM에서는 조현병 진단을 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그런 중요한 증상 중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이 1개월 이상 진행되어야 하며, 그 전구 증상이나 잔류증상까지 합쳐 6개월 이상의 문제기간이 있어야 한다. 생활 영역의 기능 수준이 발병 이전과 비교해서 현저히 감소되어 있어야 비로소 조현병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는 조건들이 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조현병이라고 진단하면 안 된다. 우울증을 진단할 때도 단지 우울하다는 이유만으로 우울증이라 진단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환자가 된다. 이때에도 약속해 놓은 진단 기준이 있다. 즉 우울과 관련된 증상(이 증상들은 수십 가지가 된다) 중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증상이 연속해서 2주 이상 지속되어야 하며, 개인에게 많은 손상이나 고통을 초래할 때 비로소 ‘주요 우울장애’로 진단한다.

만약 2년 이상 지속적으로 우울증상을 나타낸다면 지속성 우울장애로 진단하는 것들이 그런 약속이다.

이 진단기준에도 약점이나 모순은 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인 차이에 의한 문제 같은 것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DSM이라는 진단 기준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언제쯤 우리도 우리나라의 정서와 특징에 맞는 우리만의 진단 기준을 가지게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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