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 연맹체 단계 벗어나 고대국가 체제 이룩”

  •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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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3 07:32  |  수정 2017-05-23 07:32  |  발행일 2017-05-23 제11면
■ 고령군-서울시 ‘대가야사 학술회의’
전문가들 심도있는 조명 눈길
연맹체론 비판에 이견 안 보여
고고학적 증거·문헌기록 토대
여러 형태의 고대국가론 제기
“대가야, 연맹체 단계 벗어나 고대국가 체제 이룩”
지난 19일 서울 한성백제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제11회 대가야사 학술회의에서 토론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고령군 제공>
“대가야, 연맹체 단계 벗어나 고대국가 체제 이룩”
대가야 시대의 유물들. ① 뚜껑있는 목항아리와 그릇받침 ② 왕릉 등잔 ③ 원통 모양 그릇받침


고령군과 서울시가 1천600년 전 동맹 관계였던 대가야와 백제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고 지역 간 경제문화관광 교류를 통한 상생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일 서울 한성백제박물관 강당에서 ‘대가야사 학술회의’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학술회의는 대가야박물관 주최, <재>대동문화재연구원 주관, 한성백제박물관 후원으로 마련됐으며, ‘쟁점 대가야사, 대가야의 국가발전 단계’라는 주제로 문헌사학·고고학 등 관련 분야 연구자의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대가야사 학술회의는 기조 발제인 ‘대가야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주보돈·경북대)를 시작으로 △연맹체론(백승옥·국립해양박물관) △부체제론(이형기·해양수산부) △고대국가론(김세기·대구한의대) △대가야의 국가발전과정(노중국·계명대) △사국시대론(이영호·경북대)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가야사의 올바른 자리매김과 대가야의 역사적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아울러 대가야와 백제의 후예들이 더욱더 돈독한 이웃이 되고 상생 협력의 동반자적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5년 우호교류협약을 맺은 양 지자체는 특히 대가야박물관과 한성백제박물관을 중심으로 전시·교육·학술연구 등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 대가야박물관은 2016년 기획특별전 ‘한성 백제’를 성황리에 마쳤고, 한성백제박물관은 2017년 봄 특별전으로 ‘가야, 백제를 만나다’라는 주제 기획전을 개최했다. 또 지난 3~5월 가야사에 대한 시민의 올바른 인식과 저변 확대를 위해 양 박물관에서 ‘가야사 시민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제11회 대가야사 학술회의 주요 내용

대가야의 국가발전단계에 대해서는 연맹체론에서부터 지역연맹체론, 고대국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과 견해로 엇갈리고 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기존 연맹체론에 대한 비판에는 별다른 견해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양한 고고학적 증거와 문헌기록을 통해 여러 형태의 고대 국가론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지역연맹체론은 가야 전체를 단일 연맹체로는 볼 수 없으며 복수의 지역연맹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고령에 존재했던 대가야의 경우 이미 연맹체 단계를 벗어나 주변의 제국을 아우르는 영역국가, 즉 고대국가 단계에까지 진입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첫 주제발표자로 나선 국립해양박물관 백승옥씨는 “가야연맹체설은 학계에서의 비판으로 인해 입지가 상당히 약해졌다. 그러나 현행 고교 각종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전·후기 단일연맹체설을 바탕으로 가야사를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그는 “연맹체설에 대한 비판은 가능했으나 대안 제시가 미흡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또 “가야제국의 존재 형태와 관련한 사료를 검토해 본 결과, 가야제국은 일시적으로 특정지역에서의 연맹은 존재했지만, 항시·항존적인 연맹체를 이룬 적은 없었다. 이에 기존설을 극복 또는 계승 발전하는 ‘가야 지역국가론’을 제창하게 됐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이형기씨는 ‘대가야 고대국가론’을 통해 “대가야는 3세기 중엽 야로철광 개발과 비옥한 농토를 바탕으로 서서히 성장해 나갔다. 4세기 중엽에는 백제와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선진문물을 수입하게 됐고 그 발전속도는 향상됐으리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와중에 5세기 초 고구려군의 남정(南征)으로 선진문물을 가진 일부 주민이 유입되면서 기왕의 대가야 성장조건에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대가야는 급격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대구한의대 김세기 교수는 “비록 50~60년의 짧은 기간이지만 대가야의 경우 대체로 5세기 중후반에는 고대국가 체제를 이룩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김 교수는 △왕권의 세습 인정 △부체제를 통한 지방조직의 성립 △수위제에 보이는 중앙관제 △낙동강 이서에서 지리산과 섬진강, 남강 이북에 이르는 영역의 확보 △신라와 백제에 군사를 파견할 정도의 군사력 △당시 국제사회에서의 확실한 지위인 남제로부터의 작위 수여 △고고자료에 보이는 금관의 사용 △대왕명토기, 고아동 벽화고분 연화가 상징하는 불교의 수용 등을 내세웠다.

계명대 노중국 교수는 “가야를 구성한 국가는 각각 독자적인 국가로 존재하다가 마침내 신라에 의해 병합됐다”며 “가야가 갖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가야사를 논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성립과 발전을 논하면서 동시에 가야연맹체의 전개 과정도 함께 논해야 한다. 이런 이중적인 성격은 대가야의 국가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북대 이영호 교수는 “한국고대사에서 삼국시대론의 대안으로 제기된 사국(四國)시대론은 가야사 경시 풍조에 대한 반발로써 제기된 측면이 강하다”며 “이는 아직 학술적 용어로 정립됐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오늘날의 현실에서 가야사 연구 활성화에는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학술회의는 관련 연구자들과 서울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다양한 견해 차이를 재검토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령=석현철기자 sh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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