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협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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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2   |  발행일 2017-05-22 제31면   |  수정 2017-05-22
[월요칼럼] 협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여소야대(與小野大) 정치지형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상황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수시로 출현하지만 소통과 협치(協治)의 리더십으로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도자가 많다. 스웨덴은 1920년대 이후 집권 여당이 다수당이었던 적이 단 두 번뿐이었다. 지금도 8개 정당이 349석을 분점하고 있다. 연정과 협치가 아니면 정부가 일하기 어려운 구조다. 1946년부터 1969년까지 총리로 재임한 사민당의 타게 엘란데르 총리(1901~85)는 이 같은 정치 환경 속에서도 복지의 기틀을 닦아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자신의 별장에서 만찬을 열고 재계와 노조대표 등 이해당사자들을 초청해 대화하고 설득했다. ‘목요클럽’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 모임은 스웨덴의 상생정치를 상징하는 모델로 통한다. 엘란데르 총리는 또 매년 여름휴가철이면 별장인 하르프순드에 정·재계, 노동계 인사들을 불러 국정 전반을 논의했다. 주요 현안이 있을 때는 수시로 스톡홀름의 하가성(城)으로 정당 대표들을 초대해 협조를 구했다. 그가 11번의 선거에서 승리하고 23년간 총리 자리에 머물 수 있었던 것도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했기에 가능했다.

미국도 정권 심판 성격을 띠는 중간선거를 거치면서 여소야대 지형이 자주 등장한다.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연임에 성공한 대부분의 대통령이 여소야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미국은 여당이 야당·언론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정국을 풀어나가는 협치의 전통을 자랑한다. 특히 임기 8년 가운데 6년이 여소야대였던 레이건 전 대통령은 공식적인 집무시간 중 70%를 야당 인사를 만나는 데 투자했다. 그는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1인자 토머스 오닐 하원의장의 칠순잔치를 백악관에서 열어줄 정도로 야당을 배려했다. 레이건의 퇴임 직전 지지도는 취임 직후 지지도보다 더 높았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문재인정부도 여소야대의 험난한 길 앞에 서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이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120석에 불과하고 5당 체제라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큰 부담이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원활한 국정운영도 어렵고 촛불민심을 구현할 개혁입법도 불가능한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여기다 쟁점법안을 처리하려면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거대한 암초를 넘어야 한다. 반면에 진보층의 개혁 요구와 기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자칫하면 새 정부가 역대 최약체 정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난국을 돌파할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청와대와 여당이 야당과 소통을 강화하고 협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에 앞서 각 당의 대표를 방문한 데 이어 여야 5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오찬을 갖고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구성도 합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204일째에 여야 대표와 첫 회동하고 임기 중 고작 6차례 야당 지도부를 만난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행보다.

물론 협치의 길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곳곳에 지뢰밭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대선 패배 이후 재기를 노리는 야당과 개혁과제 완수가 목표인 청와대·여당은 지향점부터 다르다. 야당도 당장은 국민의 눈을 의식해 협조하겠지만 새 정부의 공약이행을 위해 계속 발 벗고 나설지는 미지수다. 내년 지방선거가 가까이 다가오면 야당의 대통령 흔들기가 본격화될 수도 있다. 만약 6~7월로 예상되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당권을 잡는다면 협치는 사실상 물 건너간다. 결국 문 대통령이 초심을 잃지 않고 먼저 야당에 손을 내밀고 통 큰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협치는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드러난 준엄한 민의다. 당장 24~25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29일부터 열리는 6월 임시국회가 협치의 시험대가 될 듯하다. 여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민주당은 국정의 동반자로 진정성 있게 야당을 대하고, 야당은 비판과 견제 역할은 충실하되 과거처럼 사사건건 발목 잡는 구태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청와대도 개혁 욕심이 앞서 입법 대신 ‘업무 지시’만 쏟아내 야당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협치의 틀과 전략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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