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 앞에서 받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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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7 07:52  |  수정 2017-05-17 07:52  |  발행일 2017-05-17 제31면
[문화산책] 문 앞에서 받은 상처

간호학과의 기본 교육과정에는 병실 문 앞에서의 자세를 가르치는 수업이 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는 손으로 열고 닫는 것이 좋다. 물건을 내려놓고 문을 열며, 방 안에 있는 사람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문을 활짝 열지 않는다. 여닫이문은 손잡이의 안쪽,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서 열며, 미닫이문 앞에서는 문짝이 열리는 방향 쪽에 선다.’

문을 여는 일이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임을 이처럼 잘 표현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을 만나면 우리는 으레 자신의 평소 행동을 그려보게 된다. 나는 손잡이를 잡지 않고 몸으로 문짝을 밀친 적은 없는가? 여닫이문을 너무 활짝 열어 문짝이 벽에 부딪힌 적은 없었나? 문 앞에서 누군가 마주쳤을 때 서로 피하지 못해서 곤란한 적은 없었나? 나도 모르게 문지방 위에 올라서 있을라치면 할머니의 매서운 야단을 맞은 기억도 떠오를 것이다.

예전의 건축가들은 열리지 않는 창을 문 위에 만들기도 했다. 안에 누군가 있는지 노크 없이도 알아챌 수 있었고, 혹시 불을 끄지 않고 나왔을 때도 참 유용했다. 무늬유리를 끼워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안을 들여다보이는 일은 피했지만, 빛과 인기척은 새어나와 암흑과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개인적이며 불안정한 사회로 변화하면서 각자의 안전과 기밀의 성능이 더욱 강조되었고, 문 위의 창도, 독특한 형태의 문고리도, 다양한 이름의 문들도 사라졌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각자의 경험이 빈약해졌고, 이것은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에도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느낀다.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최소한의 도덕’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기술화는 우리의 행동거지에서 망설임이나 신중함, 애정 같은 것을 몽땅 추방해버린다.” 수단과 목적 관계에 완전히 종속되어 버린 사물들. 그리고 거기에 다시 종속된 사람들은 각자의 행동 이후의 여운이나 사색을 전혀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뒤에 오는 사람을 생각지 않고 그냥 닫혀버린 문에 부딪힐 뻔했던 기억이 모두에게 있다. 아무 정보나 암시가 없이 똑같이 생긴 문 앞에서 막막했던 적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단순하고 거칠어진 것은 목적에만 충실한 사물의 속성이 인간의 행동 위에 군림해서다. 문 옆으로 비껴서있고, 문지방 위에 올라서지 말고, 문 앞에선 목소리를 낮추라는 잔소리를 해줄 사람이 그립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문 안팎을 넘나든다. 공간의 사물과 사람의 행동이 어우러질 때 몸과 마음의 능력이 키워진다. 문은 우리에게 세상과의 관계 맺는 법을 가르친다.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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