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築城 사람제물 흔적” 경주 월성 성벽서 인골 2구 출토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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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7   |  발행일 2017-05-17 제2면   |  수정 2017-05-17
‘人柱설화’사례 국내 첫 확인
“사망한 뒤 의례행위 후 매장”
서북쪽 해자서 터번 쓴 토우
글씨해독 가능 목간 등 발견
20170517
경주 월성 성벽에서 1천500년 전 제물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출토됐다(왼쪽). 소그드인으로 추정되는 토우의 터번을 쓴 모습. (문화재청 제공)

신라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의 성벽에서 1천500년 전 제물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출토됐다. 또 중앙아시아에 살던 이란계 주민인 ‘소그드인’으로 추정되는, 터번을 쓴 토우(土偶·흙으로 빚은 사람 형상의 인형)와 병오년(丙午年) 간지가 정확하게 적힌 목간도 발굴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6일 경주 월성 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이 같은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문화재청은 5세기 전후에 축조된 서쪽 성벽 문지(門址·문 터) 기초층에서 똑바로 누워 있는 인골 1구와 얼굴·팔이 이 인골을 향해 있는 또 다른 인골 1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성벽 유적에서 인골이 출토된 것은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이다. 이는 제방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주춧돌 아래에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주(人柱)설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인골 얼굴 주변에서는 나무껍질이 부분적으로 확인됐다. 발치에는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4점이 출토됐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똑바로 누운 인골은 키 166㎝의 남성이며, 다른 인골은 키가 159㎝로 아직 성별은 파악되지 않았다”며 “인골은 결박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고 곧게 누운 점으로 미뤄 사망한 뒤에 묻은 것으로 판단되며 의례 행위를 치르고 나서 매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려사’에 충혜왕 4년(1343) 인주설화로 ‘왕이 민가의 어린아이를 잡아다가 새로 짓는 궁궐의 주춧돌 아래에 묻는다’라는 유언비어가 돌았다는 기록이 있다.

월성의 서북쪽 해자에서는 높이 5~10㎝의 독특한 모양의 토우와 목간이 나왔다. 6세기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른 새끼손가락 크기의 토우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페르시아풍의 긴 옷을 입었다. 연구소는 “이번에 발견된 토우는 국내에서 나온 소그드인 토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발굴된 목간 중 글씨를 해독할 수 있는 유물은 모두 7점이다. 목간에는 ‘丙午年’(병오년)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 경주가 아닌 다른 지역 주민에게 준 관직인 ‘一伐’(일벌), 노동을 뜻하는 ‘功’(공), ‘아뢰고’의 이두식 표현인 ‘白遣’(백견), 관직명인 ‘典中大等’(전중대등) 등이 기록돼 있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목간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병오년은 586년이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신라 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곰의 뼈,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한 가시연꽃의 씨앗, 손칼과 작은 톱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얼레빗 등도 발견됐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주 월성은 제5대 파사왕 22년(101) 성을 쌓기 시작해 신라가 망한 935년까지 궁성으로 쓰였다.
경주=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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