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원의 배 아픈 이야기] 상부 위장관 출혈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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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6 07:42  |  수정 2017-05-16 07:42  |  발행일 2017-05-16 제20면
[곽병원의 배 아픈 이야기] 상부 위장관 출혈

내과 전공의 시절 피를 토하며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떨어지는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목에 굵은 바늘을 찔러 혈관을 확보해 수혈하면서, 코를 통해 위 속에 고무관을 넣어 피가 멈출 때까지 얼음물로 위 세척을 하곤 했다. 응급실 바닥은 피바다가 되었고 몇 시간 동안의 세척은 예사였으며 밤을 새우는 날도 허다했다.

평소 배가 아팠다면 위·십이지장궤양 출혈로, 그렇지 않거나 간이 나빴다면 식도정맥류 출혈일 것이라 추정하고 당시 위내시경검사의 대가로 불리던 교수가 밤에도 응급 위내시경을 실시, 출혈부위를 확인하기도 했다. 다행히 피가 멈추면 내과적인 치료가 가능했으나 출혈이 지속되는 위·십이지장궤양은 외과에 의뢰해 수술로 해결했다.

간경화증 환자의 식도정맥류 출혈인 경우 위와 식도에 풍선이 달린 기구를 넣어 풍선으로 압박, 지혈시켰는데 며칠 뒤 풍선의 바람을 뺀 뒤 출혈이 멈추면 다행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땐 외과로 전과되어 배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절개해서 하루 종일 걸리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과 교수 한 분이 일본 연수를 갔다 오시면서 내시경을 통해 지혈제를 주사할 수 있는 주사침을 한 개 얻어 왔다. 그 주사침으로 필자가 주치의를 맡고 있던 간경화증환자에게 담당교수가 식도정맥류에 직접 지혈제를 주사하는 시술을 했다. 이것이 대구 최초의 상부위장관 출혈의 내시경적 지혈이었다.

그런데 지혈제를 주사한 부위에서 바늘을 빼자마자 출혈이 되어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재래식 방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사침을 찌른 자리에서 어느 정도 출혈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필자가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몇 년 뒤 호주에 연수를 가보니 진단적 내시경을 받는 환자의 수는 우리보다 적었지만 치료내시경은 외과 영역의 복강경수술과 함께 우리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다. 위장관 출혈의 경우 지혈제의 국소주입법뿐만 아니라 식도정맥류의 밴드결찰술, 레이저치료, 전기응고 조작법 등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 곽병원에 돌아와 내시경적 치료를 적용하게 되자 상부위장관 출혈 환자들이 수술을 받게 되는 예는 급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피를 토하는 응급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가 위내시경을 실시했다. 위장의 작은 혈관에서 피가 분수같이 쏟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혈제 주입기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식도정맥류 결찰밴드로 노출 혈관을 묶어버렸다. 그 결과는 환상적이었으며 그 방법은 책에서 본 적도 누구에게 들은 적도 없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학회에 보고하지는 않았는데, 몇 년 뒤 그러한 치료법이 학회에서 보고되는 것을 청중석에서 보게 되었다.

<곽동협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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