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배냇저고리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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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5   |  발행일 2017-05-15 제31면   |  수정 2017-05-30

상주시 함창읍내의 함창장터 안에 ‘함창협동예술조합’이라는 건물이 있다. 당초 지붕만 있던 장옥에 벽을 덧댄 것이어서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구조물이다. 함창명주의 거래가 활발하던 시절에 이곳은 명주시장이었다. 명주산업이 쇠퇴하고 거래 방식도 인터넷이나 전화주문, 택배 등으로 바뀜에 따라 명주시장은 명분을 잃었다. 바닥과 아케이드만 남은 채 쓰레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물건을 쌓아 놓는 적치장으로 퇴락했다. 이것이 2015년 함창마을미술프로젝트가 실행되면서 협동예술조합이라는 건물예술품으로 변신했다. 마을미술프로젝트 팀은 장옥에 벽을 두르고 누에와 배냇저고리를 주제로 예술품을 설치했다. 벽은 삼백의 고장을 상징하는 흰색으로 칠하고 배냇저고리 50벌을 붙여 놓았다. 이 배냇저고리는 함창에서 명주 관련 일을 하거나 취미로 바느질을 하는 여성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제작한 것이다. 함창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상자에 넣어 벽에 붙여 놓았다. 지역주민들이 함께 참여한 배냇저고리 프로젝트였다. 이 사업 종료 후 지금까지 함창읍 사무소에는 12건의 출생신고가 들어왔으며, 이 아기들에게 벽에 걸려 있는 배냇저고리를 한 벌씩 선물, 지금은 38벌이 남아 있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 처음으로 입히는 배냇저고리는 보온과 위생에 중점을 두었으며 입히고 벗기기 쉽도록 넉넉하고 간편하게 만든다. 배내옷은 원래 운수 좋은 옷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빨지 않고 두었다가 시험, 재판, 전쟁에 나갈 때 겉옷의 등판 속에 꿰매었다. 요즘도 수능이나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가는 아이에게 배냇저고리를 덧댄 옷을 입혀 보내는 부모가 있다.

엑스코에서 어제(14일)까지 대구 베이비&키즈 페어가 열렸다. 이 박람회에 상주의 명주잠업영농조합법인이 만든 배냇저고리 ‘아희’도 참가했다. 아희는 상주농업기술센터가 함창명주로 지난해 개발한 배냇저고리 브랜드다.

새 정권이 들어선 요즘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에 모든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총리와 청와대 비서진 등 중책이 발표될 때마다 기대와 우려가 출렁인다. 곧 주요권력 기관장과 장·차관의 인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새로 탄생하는 문재인정부의 조직이 ‘아희’처럼 질 좋은 명품 명주 배냇저고리가 되면 좋겠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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