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인공지능과 송화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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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5 08:10  |  수정 2017-05-15 08:10  |  발행일 2017-05-15 제17면
[행복한 교육] 인공지능과 송화다식

선생님, 오랜만이지요? 어찌 지내시는지요?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일 년에 며칠 날리는 송화 가루마저 밉상이 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먹었던 송화다식이 요새 자꾸 기억납니다. 기억은 옅어 무슨 맛이었는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데 이상하지요. 감각만 남아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니 학생들이 낯선 전설처럼 웃습니다.

저는 한동안 우울하였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키워드로 한 SF 영화와 강연을 너무 많이 봤거든요. 저의 수용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딥 러닝’하는 인공지능은 정말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인간들이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가르쳤는데 이제 기계 스스로 학습하고, 기계가 기계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인공지능은 잠도 안 자고, 많은 양을 빨리 습득하고, 익힌 것은 절대 잊지 않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서 통합하고,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기계끼리 협력도 합니다. 못하는 게 뭐야 싶습니다.

기계의 학습 속도를 보며 인간인 저는 씁쓸해졌습니다. 곧 기계가 우리를 추월할 거라는, 어쩌면 기계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를 닮은 기계가 어느 날 사춘기의 중2들처럼 “나를 내버려 둬, 나는 당신들의 부속품이 아니야”하고 반항하는 질풍노도의 미래가 올 것만 같습니다. 이런 걱정을 하니 친구가 “미래 걱정을 당겨서 한다”며 웃습니다. 선생님도 웃으시는지요?

그러다 오늘 햇빛 맑은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거기 있었습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바뀌는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묻습니다. “그러면 기계가 완전히 인간에게 복속되고, 인간이 기계의 주인 노릇을 한다면 걱정이 없겠니?”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생태계의 제왕인 것처럼 살고 있는 인간들이 만능의 기계까지 휘하에 두고 살면, 그때는 모두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그때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워 다투고 불안해할까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선택의 법칙이 지적 설계의 법칙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유전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 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과 욕망까지 설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발전과 인간의 행복은 별도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40년을 살든, 120년을 살든 인간의 행복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을 되새기다 오늘에서야 제가 4차 산업혁명을 핑계로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을 옆으로 제쳐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계를 부리든, 기계의 부림을 당하든 인간의 정체성과 지향성 탐구는 여전히 우리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설령 사이보그가 되어도 우리는 물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선생님, 인공지능에 대한 저의 불안이 전설처럼 우스워지는 날도 오겠지요. 말로는 잘 표현 안 되는 희미한 감각의 불안에 대해 어느 봄날 글을 쓸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날에도 송화는 노랗게 날리고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과 차를 곁들인 송화다식을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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