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 ‘레이지 모닝’ 홍사광·배현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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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2   |  발행일 2017-05-12 제41면   |  수정 2017-05-12
55겹 촉촉한 속살에 겉은 파삭…대구서 먹는 제대로 된 크루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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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전문 베이커리커피숍 ‘레이지 모닝’ 공동대표인 홍사광(오른쪽)·배현진씨. 직원들이 사장도 될 수 있고 수익금까지 공유할 수 있는 ‘빵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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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 모닝’은 손님과 직원이 눈높이로 만날 수 있게 주방과 진열대를 오픈식으로 설계했다.

프랑스는 누가 뭐래도 일본과 함께 제빵의 메카. 가장 프랑스적인 빵은 뭘까. 단연 바게트와 페이스트리가 아닐까 싶다. 페이스트리도 두 종류. 무발효면 ‘퍼프(Puff) 페이스트리’, 발효하면 ‘데니시(Danish) 페이스트리’라 한다. 크루아상은 데니시 페이스트리. 겉은 운모·층석처럼 파삭하게 잘 부서지는 반면 속은 촉촉한 벌집 구조를 가진 ‘크루아상(Croissant)’. 유래가 재밌다. 1683년쯤 오스만제국(터키)이 오스트리아 빈을 공격할 당시, 헝가리의 한 제빵사가 우연히 굴을 파 기습하려던 적의 침입을 엿듣게 되었고 이를 즉시 성주에게 알려 적을 막을 수 있었다. 이 공로로 제빵사는 그 지역 귀족들에게 빵을 납품할 수 있게 된다.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만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든다. 이후 오스트리아 공주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후가 되면서 프랑스로 퍼진다. 최근 프랑스가 크루아상을 자기 것이라 우기자 터키는 크루아상은 원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 모양을 본떠 만든 ‘달빵’이 원형이라고 맞서고 있다. 아무튼 그 크루아상이 대구에도 상륙해 세몰이를 시작했다.

17C 오스트리아서 유래 초승달 모양 빵
마리 앙투아네트 왕후되면서 佛로 전파

충남지역 대학 제과제빵과 출신 두 청년
‘나이 적을때 망해야 재기확률 높다’신념
월급 등 꿈 실현 자금 마련 후 장소 물색
‘전국순례’ 100여곳 중 2010년 대구 낙점

중앙로역 인근 미니커피숍 ‘로더’2년여
삼덕성당 옆 롤케이크점‘노엘블랑’이어
시청 근처에 크루아상 전문 ‘레이지모닝’
우유버터와 유기농 재료로 갓 구워 내

◆ 청년장사꾼 & 크루아상

대구시청 근처 크루아상 전문점인 ‘레이지 모닝(Lazy morning)’. 오후 3시 한가할 줄 알고 찾았는데 아니다. 오후의 무료한 뱃속을 크루아상으로 달래려는 20대가 적잖이 포진해 있다. 이 빵집은 커피숍·카페·레스토랑의 특징을 고루 가졌다. ‘빵은 주인이 만들고 손님은 그냥 먹는 사람’이란 고정관념도 파괴했다. 주방과 진열대를 최대한 오픈하고 손님 동선과 맞물려 돌아가도록 설계했다.

31세 동갑인 둘은 충남 홍성군 혜전대 호텔제과제빵과 출신. 2009년 졸업했다. 홍사광(이하 홍)은 서울 홍대 앞 커피숍, 배현진(이하 배)은 대한항공 케이터링 관련 베이커리 파트에 있었다. 둘의 스타일은 좀 달랐다. 이론에 강한 배는 회계학적인 감각, 반면 홍은 추진력이 강하다. 배는 머리, 홍은 몸이다.

둘은 월급만으로 짤 수 있는 인생설계는 꽝이라 생각한다. ‘한 살이라도 적을 때 망해야 재기할 확률이 높다’고 믿었다. 둘은 알바를 통해 사업 자금을 모았다. 코피가 터졌다. 손님이 남긴 안주로 허기를 기웠다. 수면은 4시간 남짓. 교통편은 지하철과 버스.

그렇게 반년 뛰어 1천500만원 정도 모았고 동시에 사표를 낸다. 새로운 창업. 꿈은 부풀었지만 실천할 탄알이 턱없이 부족했다. 1천만원이 부족해 친구들을 동원시켰다.

서울에서 사업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왜 굳이 서울이어야만 하지? 자신의 꿈을 받아줄 만한 공간을 찾아 전국순례를 감행한다. 숙박비를 아끼려 빌린 승용차에서 잤고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100군데 이상을 찾아도 마땅한 가게가 없었다. 대전을 떠나 포항으로 가던 중 무심결에 대구에 오게 된다. 거기서 권리금 없는 가게를 잡게 된다.

◆ 맨땅에 헤딩하듯 개업

두 달간 개업준비. 공사도 직접 챙겼다. 2010년 가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3번 출구 앞에서 ‘로더(Lodeur)’란 미니커피숍을 차린다. 주메뉴는 커피와 쿠키. 아메리카노를 1천500원에 팔았다. 달리 수가 보이지 않아 일단 박리다매로 갔다. 쿠키도 딱 두 종류(버터·초코쿠키)만 구웠다. 첫날 매출은 7만원. 최대한 아껴야만 했다. 가게 바닥에 스티로폼을 요처럼 깔고 잤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

그때 울컥한 기분에 홍이 배한테 편지를 보낸다. ‘맘이 맞지 않아 우정에 금이 갈 것 같으면 사업을 접자. 우정을 잃을 순 없잖은가?’ 그걸 읽은 배도 홍에게 같은 의미의 답장을 보냈다. 둘은 그 편지를 지금도 부적처럼 지니고 있다. ‘동업하면 찢어진다’는 통설을 뒤엎고 싶었던 것이다.

“7만원의 숫자는 절망의 숫자가 아니라 시작의 숫자였어요.”

거기서 2년을 버텼는데 1년은 적자. 매달 50만원 정도 갖고 갔다. 직장 시절보다 훨씬 못했다. 2년차부터 단골이 생기기 시작한다. 월 200만~300만원을 찍었고 나중에 월 1천만원 매상을 올린다. 2년차까지는 전공인 빵보다 커피에만 집중했다. 슬금슬금 지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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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층이 촘촘하게 잘 형성된 크루아상의 속.

◆ 재충전의 필리핀 여행

가게 정리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는데 갑자기 필리핀으로 간다. 한 사업가가 둘에게 필리핀 현지 카페 창업컨설팅을 요청한 것. 하지만 현지에서 괴한한테 납치당할 뻔한 사고를 당한다. 도망치듯 대구로 온다. 정신 차리고 중구 삼덕성당 옆에 ‘노엘블랑’이란 베이커리카페를 차린다.

“유명 브랜드 세상이라서 커피만으로는 승산이 없었어요. 그래서 빵을 잡은 거죠.”

비로소 둘은 주특기를 발휘해 롤케이크 전문 커피숍을 차린다. 무려 14가지 롤케이크를 팔았는데 당시 지역 첫 케이크 전문점으로 알려진 ‘최가네’와 차별된 뭔가를 선보여야만 했다. 그래서 롤케이크 하나만 잡았다. 기존 케이크는 크림이 아니고 잼이 주종이었다. 둘은 일본 ‘도지마 롤케이크 버전’을 벤치마킹했다. 잼을 버리고 유기농 생크림을 잡았다. 기본 생크림부터 티라미수, 녹차, 단호박, 고구마 등도 차례로 사용했다. 버터, 유화제 등을 사용하지 않는, 임산부와 아이까지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힐링 케이크’를 홍보포인트로 잡았다. 커피도 드립해주고 곁에서 직접 케이크도 만들어냈다. 석 달째부터 정상궤도.

그사이에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에서 카페 하나를 위탁경영했다. 커피와 기본 쿠키 정도를 파는 테이크아웃점인데 1년 정도 했다. 이제 밑바닥 경험은 끝. 크루아상을 위한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크루아상 위한 유럽여행

크루아상 때문에 유럽의 기본적인 빵문화를 체득하기 위해 한 달 벤치마킹 유럽투어를 떠난다. 미슐랭 스타 음식점도 가봤다. 한국이 유럽·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걸 감안할 때 아직 대중화는 안 됐지만 조만간 크루아상 붐이 불 것 같았다. 유럽에선 크루아상이 이미 주식으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기존 롤케이크는 유행을 많이 탈 것 같았다. 반면 페이스트리는 유행이라기보다 하나의 문화로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배가 적극적으로 나서 서울 강남구 한남동 아티장베이커스 대표인 모태성씨 밑에서 한 수 배우고 온다.

크루아상 메뉴는 4종(기본·아몬드·크림·초코), 구운 과자는 마들렌 등 6종, 치아바타·버터프레츨 등 모두 14종의 메뉴라인이 형성된다.

둘은 승리를 위해선 최고의 재료만 사용하고 종일 빵을 구워내자고 다짐한다. 당일 판매 원칙, 남는 건 푸드뱅크에 기부. 저급한 마가린과는 결별하고 더 비싼 100% 우유버터만 고집한다. 밀가루는 프랑스·캐나다산 밀가루와 유기농 통밀을 섞어 사용했다. 시간대별 빵 판매량 추이를 분석하곤 하루 5~6회 빵을 굽는다.

“오븐에서 나온 뒤부터 빵의 노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1~2시간마다 갓 구운 걸 팔려고 한 거죠.”

크루아상은 적당하게 층이 잡히도록 접어줘야 된다. 현재 55겹(90g)을 유지한다. 200겹 이상도 가능하지만 그게 반드시 좋은 식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겹 수가 적으면 겉은 파삭한데 기름기가 많이 빠지고 수분기가 부족한 반면 겹이 많으면 파삭한 식감은 줄고 대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한 것 같아요. 너무 발효를 많이 하면 결이 예쁘게 안 나와요. 공기층도 벌집 구조가 유지되도록 합니다. 무척 까다롭죠?”

기본형 크루아상을 한 점 씹었다. 파삭한 겉은 과자, 속은 빵, 침과 함께 식도를 넘어갈 땐 떡의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개 평균 4천원. 묵직한 가격이지만 재료를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웃을 때 둘의 표정은 ‘누룩톤’.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의 위대한 힘을 비로소 깨달은 걸까.

더 큰 꿈이 있다. 맘이 맞는 열정파 청년에게 일자리를 안겨주고 싶단다. 식재료를 공유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빵체인’이다. 직원이 사장이 되는 구조. 이들이 독립해 자기 가게 내고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는 ‘행복한 빵공동체’를 찾는 것이다.

“양심이 없으면 셰프도 없죠. 더 잘될수록 더 만족해선 안 됩니다.”

의미심장한 첨언을 주곤 서둘러 작업장으로 사라지는 두 남자. 갑자기 빵집이 수확 직전의 밀밭처럼 일렁거린다. 매주 일요일 휴무. 중구 동인2가 56-9.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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