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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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9   |  발행일 2017-05-09 제30면   |  수정 2017-05-09
20170509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결전의 날이 밝았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 시험은 답안지 기표공간이 10개도 넘지만, 사실상 오지선다(五枝選多)형 객관식이다. 시험이란 게 원래 열심히 공부한 만큼 답 고르기가 수월해야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관심을 가질수록 미궁에 빠져든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각각의 보기들이 서로 물어뜯고 할퀴면서 상대를 ‘몹쓸 답안’으로 만든 탓에 수험생들은 그저 곤혹스럽기만 하다. ‘이런 시험을 꼭 쳐야 하나’ ‘다른 보기는 없나’ 등과 같은 냉소만 득실거린다.

갑갑하다. 시험날이 공지된 후 눈을 부릅뜨고 ‘선수’들이 추천하는 참고서까지 훑어가며 나름의 선택기준을 세우려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답은커녕 보기가 맞는지조차 판단이 안 서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귀가 얇아서 그런지 이내 발목이 잡힌다. 자기만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우기면서 유혹을 하지만 여간 고민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수험생이 고사장에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문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결시해도 그 시험이 무효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혐오와 증오 가득한 한국정치
외면할수록 그들만의 리그
더이상 방관하면 미래없어
투표 참여로 성난 민심 전달
‘天下憂樂在選擧’ 되새겨야

일단은 반가운 소식이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1천100만명 이상이 새 지도자를 뽑는 대열에 선발대로 귀한 발걸음을 했다. 이왕이면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막판에 웃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허무하진 않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다는 팩트를 ‘웃는 1인’으로 하여금 유념케 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된다.

대한민국 정치는 주객이 한참 전도됐다. 지금껏 드러낸 치부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적어도 국내에선 ‘워스트 브랜드’로 각인됐고 이는 민초들의 삶과 역사가 증명한다. 자기와 소속 당을 위한 일상이었을 뿐 조국과 국민을 위한 립서비스와 몸짓은 그저 미끼상품이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성공한 것이 있으니, 바로 ‘정치혐오’라는 바이러스를 방방곡곡에 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틀 안에서 자기들만의 다툼을 보란 듯이 이어가고 있다. 포장지에는 국민이 항상 덧칠되지만 내용물에는 없다.

이런 인식은 미래 대한민국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우리 사회가, 그리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경험칙 같은 확신이 무겁게 확산되고 있다. 수십년간 매번 세상을 바꾸겠다고, 서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치던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권력을 잡고 국정을 이끌었지만 결과는 항상 도긴개긴, 기대치를 밑돌았다.

지도자를 뽑을 때 선택의 상당한 근거가 되어야할 정책과 비전은 이런 풍토에서 설자리가 마땅찮다. 아니,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쌍방과실일 수도 있는 이 같은 현상은 네거티브의 산물이다. 수차례 이어진 TV토론은 예상대로 후보들의 하향평준화를 견인했다. 상식보다 몰상식에 흥미를 보이는 속성을 십분 활용해 ‘잘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은 그냥 스쳐가고 ‘저런 사람이 돼서는 안 됩니다’에는 몹시 궁금하도록 유도했다. 그릇된 한국정치의 보호막은 그렇게 막강하고 견고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25%를 넘긴 사전투표의 여세를 몰아 투표율이 80%를 웃돈다면 그들의 철옹성은 금이 가기 시작할 것이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은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명령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내쳐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제의 죄악을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선거는 무능한 사람을 끌어내리고 유능하고 바른 사람을 앉힐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이자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경북도선거관리위원회 입구에는 ‘천하우락재선거(天下憂樂在選擧)’라고 적힌 입간판이 있다. ‘세상의 근심과 즐거움은 선거에 달려있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혜강 최한기 선생의 글이다. 어리석은 자를 뽑아 정치를 잘못하면 모든 백성은 근심과 걱정으로 지내게 된다는 말도 남기셨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는 중요한 모양이다. 핑계대지 말고 일단 투표부터 하자. 그래야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자격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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