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예외 없는 트럼프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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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1   |  발행일 2017-05-01 제30면   |  수정 2017-05-01
사드 비용·FTA재협상 발언
올해말·내년초 협상 앞두고
트럼프식 판 키우기의 일환
치밀·정교하게 계획된 압박
차기 대통령·정부 부담 커져
[아침을 열며] 예외 없는 트럼프 쇼크
강준영 (한국외대교수·차이나 인사이트 편집장)

트럼프식 외교, 예측불허와 전통적 국제 규범에 대한 무시를 통해 상대의 공포심을 유발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협상을 이끈다는 소위 ‘미치광이 이론(the Madman Theory)’은 한국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28~29일 이틀 연속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은 한국이 부담해야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끔찍한 협정’이라며 재협상 또는 폐기 방침까지 밝혔다. 처음으로 사드 비용과 한미 FTA에 ‘종료’까지 언급한 것이어서 그 의도와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트럼프의 의도가 어찌됐든 이는 다음 주로 다가온 한국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이다. 게다가 사드 비용 문제와 한미 FTA는 국제적이고 국가적인 약속인데, 일방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따르라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사드는 2014년 커티스 스캐퍼 로티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배치 방침이 정해졌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배치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기로 약정을 체결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국론 분열과 중국의 보복 속에서도 북핵 위협에 대해 주한미군과 한국을 지키기 위한 ‘한미 동맹’의 결정 사항임을 강조하며 사드 배치에 협력했던 노력들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상호적인 동맹의 기본 가치와 정신을 단순히 사업가적이고 일방적인 금전 논리로 흥정하는 모습은 미국의 유수 언론이 강조한 대로 일종의 ‘배신(bad faith)’과 다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4월 한 달간 미·중 정상회담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3차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과 무역 적자에 대한 관세 부과를 무기로 중국을 회유하고 압박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고조되는 한반도 위기를 중국의 대북 영향력 발휘 및 미국의 첨단 군사력을 동원한 강력한 압박 전술을 통해 일단 최악의 위기는 넘긴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이번 발언들은 결국 미국의 역할에 대한 비용을 이젠 한국도 대야 한다는 ‘트럼프식 판 키우기 전략’의 일환이다.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시작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한미 FTA 재협상을 염두에 두고 기선잡기에 나선 것이며,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한국의 유력 대선 주자와 야당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사드 청구서와 한미 FTA 발언이 단순한 트럼프의 돌출 발언이 아니라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획된 압박이라는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때부터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일본·한국 등 다른 나라에 많은 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상호방위조약 조정이나 관련 협의를 진행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릴 것임을 계속 강조해 왔다. 특히 한국은 미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해 주는데도 아주 적은 방위비만 부담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한국의 역할을 간과한 언급이다.

한미 FTA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선 과정에서는 강력하게 한미 FTA에 불만을 제기했지만 얼마 전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를 얘기했기 때문에 ‘종료’까지 언급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전면 재개정 협상이나 종료 운운은 정치적 액션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자국이 일반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항목의 개정은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이며 난항이 예상된다.

결국 우리는 장기적으로 한·미 동맹 유지 차원에서 한국이 지금보다 확실히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트럼프의 청구서를 받았다. 트럼프식 요구의 일상화와 한중 관계의 갈등 상황에서 한미 동맹마저 흔들리면 안 된다. 차기 대통령과 정부의 어깨가 무겁다. 강준영 (한국외대교수·차이나 인사이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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