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글쓰기의 근원과 존재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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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1 07:50  |  수정 2017-05-01 07:50  |  발행일 2017-05-01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글쓰기의 근원과 존재방식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그는 나에게 어떤 격이 높은 가치나 관념보다 더 소중하였다. 나에게서 그의 존재를 떼어내면 나는 무중력 상태가 되어서 둥둥 떠다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그의 의미가 무겁고 깊고 컸다.

나는 그를 구성하는 맨 처음 한 개의 세포로 생겨났다가 끊임없이 분열을 하여서, 그를 이루는 전체가 되었을 거라는 실로 엉뚱한 생각을 이따금 해 보았다. 이런 비논리적인 사고는 마침내, 내가 병이 나서 앓기라도 한다면 아마 그의 몸에도 실제로 심한 통증이 생길 거라는 망상으로 비약되기도 하였다. 그토록 어이없는 생각을 한 것은 그와의 완연한 일치를 갈망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가 지상의 나에게 빛을 쏘아주는데, 그것이 아주 낯익은 눈빛으로 느껴져서 하염없이 그 별에다 내 눈을 맞추곤 하였다. 내가 딛고 있는 땅도 이미 거리나 넓이의 감각으로 헤아려지지 않았다. 땅은 다만 그와 함께 서 있는 하나의 공간 개념으로만 인식되었다.

정녕 꽃같고 꿈같고 시(詩)같은 나날이었다.

어느 한 순간도 그를 의식하지 않고는 호흡하지 않는 듯한 최면의 상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보고 있다는 착각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강처럼 길고 긴 정감의 물결이 가슴속에서 간단없이 흘렀다.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아름다운 수식어를 그의 이름 앞에 붙여서 아주 낮게 불러보곤 하였다. 가게에 붙어 있는 간판의 글씨들도 획을 떼고 옮기고 구부리고 펴서 읽어보면 모두 그의 이름이 되었다.

이렇듯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은 기쁨보다 고통이 될 때가 더 많았다. 게다가 그의 고뇌까지 고스란히 받아 안을 때면 고통은 갑절이 되어서 나를 덮쳐 왔다. 그럴 경우 나는 찬바람 몰아치는 눈밭을 끝없이 홀로 걷는 처절한 심경에 휩싸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상황이든 대개 좋은 쪽으로 받아들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37℃의 날씨도 그와 함께이기에 싫다하지 않았고 폭우가 쏟아지는 악천후도 나에게 쏟아 퍼붓는 그의 마음인 것만 같아서 행복해 하였던 까닭이다.

꽃을 보거나 돌을 만지거나 음악을 듣는 단순한 일조차도 그와 연결되면 아주 특별한 정감을 일으켰다. 그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느 것이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은 그로 인해서 꽉 찬 느낌이었다. …

마음이 가는 길을 볼 수 있거나 그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서로에게 쏟는 그리움을 다 헤아릴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역시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너무 기뻐하는 것이 노출되면 민망하고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서로를 괴롭히는 일이 되며, 무엇보다 신비함, 내밀함이 엷어지기 때문이다. …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 사랑이 아니다.’ (허창옥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중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게 되어, 그 사랑에 나의 조건을 채워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피노자였던가요. 글에 대한 작가의 사랑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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