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함께해 오래 사는 ‘호그벡 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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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1 07:45  |  수정 2017-05-01 07:45  |  발행일 2017-05-01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함께해 오래 사는 ‘호그벡 마을’ 사람들

향기박사가 사는 대구 달성 현풍에는 매년 4월 마지막 주에 비슬산 참꽃문화제가 열립니다. 비슬산 정상을 뒤덮은 진분홍 참꽃과 참꽃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합니다. 우린 이런 기억들이 영원하길 소망하지만 시간과 더불어 기억들은 서서히 사라져갑니다.

그런데 치매는 이런 정상적인 망각의 시간조차 더 앞당기는 슬픈 질환입니다. 우리나라는 결국 2045년이면 국민의 10%이상이 치매 또는 치매예비군인 이른바 ‘치매 사회’로 돌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환자를 격리해 보호하는 요양중심의 현재 시스템은 실제 환자의 인지기능 개선 효과는 물론 삶의 질 차원에서도 최선이라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실제 많은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들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면 환자의 의지와 자율성이 떨어지고, 이는 뇌를 자극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해 결국 치매를 더욱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의 치매 환자들은 기억력이나 인지기능에는 문제가 있지만 여전히 감정과 고통을 느낍니다. 즉 치매환자들도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누릴 권리를 가진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최근에는 치매 초기 환자들을 일방적으로 격리 요양하는 것보다 가족과 일상생활을 함께하면서 ‘생활인지’ 기능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는 새로운 치료법이 도입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치료법을 가장 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호그벡’이란 곳에 세워진 ‘치매관리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간호사였던 ‘이본느 아모릉엔’이 치매 전문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아버지를 보고 치매 환자들도 남은 일생 동안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 본인이 기획해 만든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요양원 같은 보호시설의 모습이 아니라 쇼핑센터, 극장, 대형마트, 레스토랑, 문화센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 보통의 마을처럼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150여명의 치매환자들이 250여명의 전문의료진과 함께 생활합니다. 좀 특이한 점은 의료진이 우체부, 경비원, 마트 직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환자들과 생활합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TV 쇼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영화 ‘트루먼 쇼’를 연상시킵니다. 차이라면 ‘트루먼 쇼’ 속의 주인공 주변 사람들은 열심히 간접광고를 하는 반면, ‘호그벡 마을’의 의료진은 열심히 환자들의 상태를 관찰하고 치료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일상 생활을 하는 ‘호그벡 마을’ 치매환자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아 기존 보호시설의 치매환자들과 비교해 인지기능의 저하속도도 느리고, 약물 복용도 줄었으며, 생존율로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호그벡 마을’처럼 사회가 치매 관리의 부담을 조금씩 나눠 지면서 환자 ‘생활인지’의 기능 개선 효과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치매환자 관리시스템이야말로 미래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치매환자 관리시스템 구축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인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한다면, 물리적 공간의 구획이나 치매전문 의료진에게 의존하는 ‘호그벡 마을’과 달리 실시간 환자의 맞춤형 관리가 가능한 ‘스마트 호그벡 마을’ 구축도 가능할 것입니다. 실제 이런 마을이 보급된다면 미래 ‘치매 사회’가 오더라도 우리나라는 ‘예쁜 치매’를 앓는 환자가 많은,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가능할 것입니다. 인디언의 오랜 속담 중에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란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인디언들은 이미 미래 사회의 치매관리시스템에 대한 지혜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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