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칠곡 양떼목장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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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8   |  발행일 2017-04-28 제36면   |  수정 2017-04-28
오늘은 나도 목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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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양떼목장. 유산양과 면양을 키우며 넓은 초지를 나누어 윤환 방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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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마루에서 본 칠곡 양떼목장. 주황색 건물이 건초주기 체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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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이 방목되어 있지 않은 초지는 지금 식생 회복 중이다. 언덕 위는 매점과 쉼터가 있는 하늘마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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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양떼목장 매표소 옆에는 천연 양모를 이용해 여러 가지를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장이 있다.

길고 좁은 계곡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한가운데로 천이 흐르고 그 좌우로 집들이 자리한다. 길은 천의 가장자리 가로수와 어느 가족들이 사는 대문을 양 어깨에 스치며 조심스레 나아간다. 칠곡의 지천면 창평리. 이 마을은 딸기 농사를 짓는구나. 대문간마다 딸기 소쿠리가 진열되어 있다. 천을 가로지르는 몇몇 다리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다. 지붕을 얹은 다리는 뭔가 두근거리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모습이지만 실제는 함께 거두어들인 농산물들을 모아두는 실용적인 장소다. 곧 길은 천과 멀어지고 큰 창고형 건물들이 이어진다. 제조업체들이다. 이곳에 어떻게 양들의 초원이 있다는 것이지? 잠시 후 길이 끝나면서 가파른 잿길 아래 서있는 입간판을 발견한다. 칠곡 양떼목장이다.

길고 좁은 계곡 따라 자리한 창평리
길 끝 가파른 잿길 아래 목장 입간판
타조·토끼우리 차례로 지나 오르니
2015년 한우→羊목장으로 거듭난 곳

10만㎡ 초지를 17개로 나눠 윤환방목
양털 인형 만들기·건초주기 체험장도
언덕 위 ‘하늘마루’ 쉼터와 그 옆 숲
비로드 같은 초원과 양떼 보는 재미


◆칠곡 양떼목장

언덕배기로 난 길을 시시포스처럼 오른다. 길에 코를 박고 나아가다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에 멈춘다. 오른쪽 어두컴컴한 축사 속에서 선하게 반짝이는 눈과 마주친다. 한우다. 또 다른 시선이 느껴진다. 축사 옆 축대 위에서 빠끔 내다보고 있는 눈, 타조다. 어디선가 개가 짖는다. 두리번거리다 두 발을 펜스에 올려놓고 열심히 왕왕대는 털복숭이 강아지를 발견한다. 그 아래 키 낮은 우리에는 한 가족이 붙어 서 있다. 토끼우리다. 얼핏 보아도 서른 마리는 족히 될 토끼들이 어린애 낮잠처럼 꼼지락거린다. “너무 가까이 가지마. 문다잖아.” 아빠가 아이를 제지한다. 양떼목장 가는 길은 동물농장이다.

길바닥에 세월 좋게 늘어져 누운 고양이를 지나치면 매표소다. 그 오른쪽에는 ‘천연양모 ART 체험장’이 자리한다. 양털로 인형이나 액자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몇 걸음이면 대부분의 목장이 조망된다. 평평하고 드넓은 초원이 아니라 계곡의 초지다. 골짜기는 생각보다 깊고 길은 오르내리고 초지는 비스듬하다. 한눈에 모두가 보이는 듯하면서도 저 언덕의 파란 능선 너머로 또 다른 초지들이 굴렁굴렁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칠곡 양떼목장은 2007년 이 일대 10만㎡의 초지를 구입해 초기에는 우량한우 수정란생산 부속농장으로 개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구제역 등의 여파로 농장경영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넓고 잘 정비된 초지를 바탕으로 현재의 양 체험 목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3년간 준비를 하여 양 목장으로 새로이 문 연 것이 2015년 7월, 양의 해였다. 칠곡 양떼목장이 추구하는 것은 ‘동물이 행복한 농장, 동물의 행동이 자유로운 농장, 사람과 동물이 함께하는 동행 농장’이라 한다.

◆건초 주는 아이들

매표소 맞은편 약간 둔덕진 자리에 올라서 있는 커다란 오렌지색 건물은 양들에게 직접 건초를 먹여보는 체험장이다. 가운데 통로를 두고 왼쪽에는 젖을 얻는 유산양, 오른쪽에는 섬유를 얻는 면양이 무리지어 있다. 개방해 놓은 상부 벽으로 적당한 빛이 들어왔고 바람은 들고 나며 축사 특유의 복잡한 냄새들을 흩었다. 몇몇 산양들의 뿔은 잘려져 있었다. “지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사람에게 위험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뿔이 크면 밥을 못 먹어. 고개를 내밀어야 되는데 뿔이 우리에 걸리잖아. 밥은 먹어야지.”

평일이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몇몇 가족이 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몇몇 아이들은 부모의 바지 자락을 꽉 붙잡고 한발 한발 양들과 가까워진다. 한 아이가 두 손으로 소쿠리를 받들고 일제히 고개 내민 채 재촉하는 양들에게 다가간다. 그 순간, 그 작은 손이 붙잡고 있던 소쿠리는 순식간에 양의 입에 물려 우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잠시 당황해 하다 해결사인 부모를 바라본다. 나는 내 몫의 건초 소쿠리를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몇 초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우주의 말을 옹알거렸다. “아, 빨간색이 아니라고?” 내 소쿠리는 파란색이었다. 부모란 얼마나 위대한가. 그들만이 아이의 말을 해독할 수 있다. 여하간 여자아이들의 시신경 속에는 빨강에 대한 특별한 애정신경이 발달해 있음에 틀림없다.

◆저 푸른 초원의 양들

저 멀리 하얀 텐트가 스스로 그림이 되고 있는 언덕은 ‘하늘마루’라 이름 지어진 쉼터다. 양꼬치 등을 파는 매점이 있고 텐트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초원에 양들은 보이지 않는다. 비로드처럼 윤기 나는 풀밭의 물결만이 한낮의 정적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저기 숲이 보이죠? 양들은 그쪽에 있어요.” 목동의 눈은 양들을 놓치지 않는다. 하늘마루 옆으로 가지를 맞부딪치며 술렁이는 느슨한 벽과 같은 숲이 있다. 그 듬성한 그늘 속에서 양들은 나긋나긋하게 돋아 있는 풀을 뜯고 있었다.

칠곡 양떼목장은 17개의 초지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전체를 몇 개의 목구(牧區)로 나누고 풀이 자람에 따라 차례로 각 목구에 며칠씩 방목하여 전체 목구를 한차례 도는 ‘윤환방목(輪換放牧)’을 쓴다. 방목할 계절에 따른 초지의 생산력과 가축의 종류 및 수에 따라 목구의 수와 넓이, 방목일수와 방목횟수 등이 결정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비용과 노동력이 더 많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방목하지 않는 기간 동안 초지는 스스로의 힘과 목동들의 노력으로 식생을 회복한다는 이점이 있다. 빈 초지는 지금 회복 중인 것이다.

양들은 쉼 없이 풀을 뜯고 수도 없이 울어댄다. 양들의 울음소리는 지속적인 가락으로 들리면서도 고조되지도 잦아들지도 않는 한결같음에서 오는 정적을 담고 있다. 체험장에서 양에게 건초를 먹여 본 아이들은 방목된 양들에게 훨씬 편안하고 의연하게 다가간다. 그리고 철책 가까이 쭈그리고 앉아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뚫어지게 본다. 무슨 생각을 할까. 아주 오래전 어린아이였을 때, 무슨 생각을 했었나. 언젠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칠곡나들목으로 나가 칠곡군 방향 4번 국도를 타고 간다. 덕산리에서 923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창평교 건너 계속 가면 창평1리 회관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라는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양떼목장 이정표는 작아서 잘 봐야 한다. 길 끝에 넓은 공터 주차장이 있다. 입장료는 5천원. 목장 관람과 건초 주기 체험이 포함된 가격이며 6세부터 일괄 적용된다. 하절기(4~10월)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폐장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하다. 설날과 추석 당일은 휴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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