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교육부 해체 vs 교육 해체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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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8   |  발행일 2017-04-28 제23면   |  수정 2017-04-28
[조정래 칼럼] 교육부 해체 vs 교육 해체

교육부가 때 아닌 뭇매를 맞고 있다. 5·9 장미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이 교육부 폐지를 공약하거나 기능과 역할의 대폭 축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해체든 축소든 교육부가 개혁의 시험대에 오른 건 틀림없다. 대선후보들이 어떤 식으로든 손을 봐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저간의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는 교육계 내부에서부터 ‘공공의 적’이 된 상태다. 이처럼 교육부가 지탄과 원망의 대상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친 횡포와 갑질의 역사를 써 왔다. 교육부 관료들은 지역 교육청이나 학교 현장에서는 암행어사보다 더 무서운 ‘교육 마피아’로 군림해 왔다.

교육부 해체론이나 무용론은 한마디로 교육부가 자초한 자업자득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절정에 달한 교육부의 역주행과 정권 눈치보기는 상쇄하기 어려운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은 교육부를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시켰고, 돈줄을 쥐고 흔든 대학구조조정은 대학의 서열화에 이은 지방대학의 고사를 초래하고 있다. 석연치 않은 지방 국립대 총장임용제청 거부는 ‘교육계의 블랙리스트’의 산물 아닌가. 급기야 민중을 ‘개·돼지’라고 한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망언은 교육부 철거론의 도화선에 불을 질렀다.

소행이 괘씸하다고 없애버리자는 건 합리적 해법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 대처 잘못했다고 해경을 해체하는 우는 한 번으로 족하다. 시행착오도 자꾸 하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 되는 법이다. 눈엣가시 제거하듯 교육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성 마르고 과거의 실패를 답습할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존폐 논란을 포함한 교육부의 개편문제가 대선 공약으로 떠오른 것은 분명 시의성을 반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문제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정합성을 갖추고 있느냐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부 폐지보다는 기존 교육의 해체가 교육문제 해법의 본질에 가깝다. 교육부라는 기구, 즉 하드웨어보다는 교육과정과 정책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보완·보정하는 게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혁파하고 혁신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이다. 기구와 조직의 개편과 같은 단선적인 구조조정은 추진 과정에서 엄청난 저항과 반대에 부딪혀 통상 용두사미로 끝나곤 해왔다. 그러나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교육개편은 그것을 일관되게 추진하다 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연스레 교육부와 교육관료의 구조조정에 도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공약이 설익고 어설플지언정 우리의 교육문제가 한꺼번에 실마리를 풀기에는 복잡다단하게 엉켜있다는 인식을 우리의 대선후보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건 다행스럽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성급한 교육정책을 실시하고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하는 무모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실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불합리와 전후좌우로 착종(錯綜)돼 있어 섣부른 접근을 불허한다. 공교육의 위기로 규정되는 우리 교육의 병폐가 손을 대자니 뾰족한 수가 보이질 않고 그대로 방치하자니 환부가 곪아 터질 지경이다.

기자 역시 답답하던 차에 우연히 한줄기 청사진을 발견하게 됐다. 경북대 김규원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내놓은 ‘교육문제와 교육정책’을 통독하면서다. 표제에 ‘사회학적 접근’이란 어깨걸이 수식어가 붙은 김 교수의 저서는 교육에 대한 지적·기자적 호기심과 우선 우리 교육의 환부부터 꼭 알아봐야 하겠다는 국민적 의무감을 동시에 자극했다.

저자 역시 그의 저서를 교육에 대한 ‘집단지성을 자극하는 매체이길’ 서원했듯 대학의 서열화를 없앨 상향 평준화와 ‘동료평가제’를 통한 학과 단위 조직 차원의 교수평가제 등의 정책 제언들은 가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기에 혁신적이고, 교수집단의 자성과 자율, 그리고 희생과 실천을 바탕으로 했기에 실현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 대선주자들이 꼭 필독하고 이해해야 할 금언이라 할 만하다. 교육을 통해 길러내야 할 인재상의 재정립과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고서는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고 ‘법꾸라지’만 나리라는 경고가 섬뜩하다. 교육개혁의 주체로 동참하기 위해 필요한 이해와 통찰력도 행간을 채우고 있으니 재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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