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촛불과 양심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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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6   |  발행일 2017-04-26 제31면   |  수정 2017-04-26
[영남시론] 촛불과 양심없는 사람들

19대 대통령 선거는 국민들의 누적된 분노와 절망감을 누가 달래줄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인 것 같다. 반 년 넘어 하늘거리는 촛불 하나 들고 광장에 모여들었던 국민들이 요구한 것은 무능한 대통령 한 사람 물러나게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대통령 한 사람의 무능만으로는 “이게 나라냐”라는 장탄식이 터져 나오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의 책임도 오롯이 저잣거리의 게걸스러운 아낙네 한 사람 탓인가? 부역했던 공직자들과 알면서도 침묵했던 ‘기레기’들의 죄를 더 무겁게 물어야 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1987년 유월 항쟁으로 정치군인들이 정치 일선에서 쫓겨난 뒤로 그 빈자리를 메운 인물들은 행정·외무·사법시험에 등과한 관료들과 의사·기자·교수와 같은 전문직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철밥통의 지위를 누리는 한편, 각 정당이 선거 때마다 제일 먼저 영입대상으로 꼽는 인물이다. 특히 판검사들의 정치권 진출은 그 정도가 지나쳐서 의회에서 특정직능의 이익이 과다대표되는 한편, 법원과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파수꾼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최순실이라는 괴물을 키운 것은 ‘정윤회 문건’ 파동을 없던 일로 만들었던 검사들이다. 그들은 “혈기왕성한 청년” 시절에 돼지발정제로 성범죄 모의를 하던 선배 검사가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국회의원에다 정당대표, 도지사를 거쳐 대통령 후보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법과 원칙이 아니라 권력자의 주문과 명령에 충성한 대가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행정부를 견제한답시고 꽉 깨문 입술을 여덟팔자로 드리우며 근엄한 표정을 짓다가도 공천만 받을 수 있다면, 혹 장관급의 위원장 자리만 꿰찰 수 있다면 권력자의 구두에 묻은 먼지를 코로 닦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는 판사들이 득시글거리는 사법부에 사법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글과 말을 밑천으로 사시사철 정치권 문턱을 기웃거리는 기자들의 기사에 공정성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한 나라의 외교부장관을 지냈고 그 덕에 국회의원까지 했던 인물이 선거라는 가장 첨예한 시기에,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이면서도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를 까발렸다. 송민순 전 장관의 말이 한 치의 가감없는 진실이라 하더라도 10년이란 긴긴 세월 입 다물고 있다가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합리적 의심을 소명하지 못한다면 그는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선거 시기에 공공연히 누설한 파렴치한 범죄피의자일 따름이다. 관료란 승진이나 자리만 얻을 수 있다면 생사람도 때려잡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책임지는 일은 없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도록 너무나 예술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뻔뻔스러운 관료들을 도스토옙스키는 “자기과신의 철면피” “자기면책에 대한 과대망상”에 찌든 병자라고 했다. 게다가 한국의 관료들은 쥐어 패버릴 영혼마저 없다고, 물라고 하면 무는 개라고 스스로 고백한 적도 있다. 87년 체제는 사실 이런 사람들이 5년마다 대통령을 갈아치우면서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해 온 체제라 할 수 있다.

의사도 나름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증을 얻는 직업이지만 국가로부터 공인된 양심이란 걸 받지는 않는다. 의료보험제도가 없던 시절 그 자격증을 보고 도둑질해도 된다는 허가증이라고 비아냥거렸던 사람들도 있었다. 고시만 합격하면, 박사 학위만 받으면 없던 양심이 저절로 생길까? 세상 사람들은 아우성을 친다. 공직자·의사·법률가·교수·기자의 양심을 지키라고! 그러나 안타깝지만 어떡하겠는가? 지킬 양심이란 게 원래 없었던 사람들인데….

대통령 선거가 끝나도 촛불은 꺼지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쉽사리 바뀔 세상도 아니거니와, 양심과 영혼없는 무리들의 이합집산과 줄서기를 막아내지 못하면 2017년의 촛불 혁명 역시 4·19 혁명이나 5·18 항쟁, 유월 항쟁처럼 또 ‘절반의 성공’ ‘미완의 혁명’이란 꼬리가 붙게 될 것이다.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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