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우리가 남이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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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6   |  발행일 2017-04-26 제30면   |  수정 2017-04-26
완고한 배신의 정치 프레임, 스스로 부수고 나오지 못해…텃밭에서도‘우리는 남’취급
후보사퇴 압박 받는 유승민, 후보사퇴 압박 받는 유승
20170426

“우리가 남이가~”

이 한마디에 대구·경북(TK) 지역민들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TK 출신이 아니지만 같은 영남권 후보인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게 60% 넘는 몰표를 주었다. TK에서 62%의 득표를 한 김영삼 후보는 전체 득표율 42%로, 민주당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김영삼 후보의 고향인 부산·경남에서의 득표율이 73%인 점을 감안하면, TK의 62%는 당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김영삼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TK에 대한 보은이 아닌 홀대로 지역민들의 원성을 샀다. 삼성자동차 생산라인의 부산 이전, 부산의 격렬한 반대에 따른 대구 위천국가산단 무산이라는 경제적 치명타를 대구·경북에 준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19대 대선을 보름 앞둔 지난 24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바른정당 심야 의원총회에서 소속 의원들은 유승민 대선후보에게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를 요구했다. 같은 당 동료 의원들로부터 후보 단일화를 요구받은 유 후보로선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요 5당 대선 후보 중 유일한 대구 출신인 유 후보는 같은 당 의원들의 요구에도 ‘독자 완주’ 입장을 재천명했지만, 낮은 지지율이 발목을 잡고 있다. 유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뜨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고향이자 텃밭인 대구·경북에 기인한다.

선친이 살았고 자신이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보낸 뒤 국회의원을 네 번이나 한 고향 대구·경북에서 유 후보의 지지율은 고작 10% 안팎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TK 출신의 지지율이 대구·경북에서 이처럼 낮은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부산·경남(PK) 후보에게까지도 “우리가 남이가”라며 몰표를 주었던 대구·경북 시도민들이 유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힌 것이 결정적이다. 각 언론을 통해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가장 돋보인 후보, 가장 토론을 잘한 후보로 단연 1위에 오르고 있지만,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TK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크다.

‘문재인은 찍기 싫다’ ‘홍준표는 막말을 해 격이 없다’ ‘유승민은 배신자다’. 이달 중순까지의 대구·경북지역 민심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일주일 새 20%포인트 넘게 지지율이 오른 원동력도 TK에 기반한다. 19대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7일 이후 안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TK의 결집은 무서울 정도다. 안 후보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TK 표심이 어느 후보에게 쏠릴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선 유 후보는 아닌 듯하다. TK 바닥 민심에 깔린 배신의 정치 프레임이 유 후보와 대구·경북 지역민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시절 비서실장을 맡을 정도로 원조 친박(親박근혜)이었던 유 후보가 2015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 박 전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한 것이 배신의 정치가 돼 돌아왔다.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에 산다는 여대생은 기사를 부탁한다며 “대선후보들 중 유 후보만 한 사람이 없는데, 대구에서 왜 고향 사람인 유승민 후보를 지지하지 않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유 후보에게 유리병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한다. TK 출신 보수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려면 박 전 대통령과 세운 각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이를 하지 않아 스스로를 가뒀다는 것이 이유다.

흔들리는 TK 민심이 어느 후보에게 다가갈지는 알 수 없지만 ‘배신의 정치’라는 프레임에 갇힌 유승민 후보가 어떤 히든 카드로 유리병을 탈출할까.임성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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