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일상의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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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6 08:09  |  수정 2017-04-26 08:09  |  발행일 2017-04-26 제23면
[문화산책] 일상의 시네마테크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1935년 프랑스, 무성영화가 사라지던 시절 청년 앙리 랑글루아는 무성영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무성영화만을 상영하는 씨네클럽을 만든다.

이 씨네클럽은 다음 해 영화를 상영하고 보존하는 ‘시네마테크’로 재탄생한다. 시네마테크는 영화(Cinema)와 도서관(Bibliotheque)을 결합해 만든 용어로 흔히 영화박물관이라고 해석된다. 앙리 랑글루아는 그렇게 세계 최초의 시네마테크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설립하고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수집하고 보존했다.

나치 독일에 의해 수많은 예술품이 약탈되고 파괴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영화필름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쳤고, 그렇게 보존한 영화는 2만편이 넘었다고 한다. 전쟁 후 그는 본격적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그곳엔 수많은 예술인과 영화광들이 매일같이 넘쳐났다. 그곳은 영화관이었지만, 때때로 영화를 주제로 한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이를 체험한 당시 어린 관객들,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은 이후 세계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감독들이 되었다.

“랑글루아는 영화 상영을 통해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누벨바그의 대표적 감독 장 뤽 고다르의 말처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는 공간은 영화 그 이상의 가치를 지키고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났다. 한국에서도 영화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가장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다른 한편으로 영화는 그만큼 훌륭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었고, 그것을 판매하는 영화관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1998년 서울, 강변역 테크노마트에 CGV라는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개관한 이래 영화관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그 결과 우리가 보는 영화관의 95%가 멀티플렉스고, 그 영화관들은 백화점이 되었다. 시네마테크처럼 영화를 마주하고 이를 매개로 한 다양한 활동보다는 영화를 판매하고 소비하는 데 우선을 둔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나설 때 그 공허함이란. 영화관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절이지만, 시네마테크와 같은 영화관이 더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앙리 랑글루아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지 영화필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관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사회적 가치들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공간이자 영화를 통해 배우고, 토론하고, 소통하는 일상의 시네마테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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