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공생의 지혜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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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5   |  발행일 2017-04-25 제31면   |  수정 2017-04-25

얼마 전 TV방송을 통해 본 중국 어느 벽지 호수촌의 생존 방식이 잊히지 않는다. 커다란 호수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주로 그 호수에서 나는 물고기를 주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였는데, 어민들이 물고기와 공생하는 모습에서 그들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물고기를 항상 먹을 만큼만 잡았고, 물고기 산란 철에는 금어는 물론 상류 협천으로 모이는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 쉽게 어로에 엮은 풀을 깔아 줬다. 알들의 안착과 부화율을 높이도록 돕는, 오랜 세월 그 벽촌에서 지켜온 수칙이었다. 우리나라 서해 해역까지 침범해 촘촘한 저인망 그물로 물고기 씨를 말리고 있는 요즘의 중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감동적이었다.

인간뿐 아니라 하등 짐승에게도 먹잇감을 아끼는 지혜가 있음을 다른 방송에서 봤다. 중남미에 사는 덩치가 큰 개미핥기는 주식인 개미를 매일 최대 3만마리까지 먹어야 산다. 그런데 한 개미탑에서 왕창 배를 불리지 않고 200~300마리 정도만 먹으면서 여러 개미탑을 섭렵했다. 개미의 씨를 말리지 않고 먹이 개체수를 적절히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먹잇감과 같이 살아야 자신도 산다는 지혜를 이 미물도 체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어떠한가. 귀한 것은 씨가 마르든 말든 바닥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욕심쟁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93세까지 장수하신 필자의 아버지는 대주가셨다. 젊었을 때부터 주종불문에 두주불사여서 시골 마을 인근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당신 시대에 드물게 오래 사신 것은 나눠먹기를 철저히 실천한 결과로 판단된다. 지금은 위법이지만 초등학교 교사였던 형님·형수는 그 옛날 5월 스승의 날에 학부모로부터 양주 선물을 많이 받았다. 부산이어서 외항선을 타는 학부모가 많았다. 그 수십 병의 싸구려 양주는 곧바로 시골집의 아버지에게 전해졌고, 아버지는 좋아라 하시면서 우리 동네는 물론이고 지나가는 앞마을 뒷마을 옆마을 길손들도 다 불러들여 나눠 먹었다. 만약 그 독주를 아버지 혼자 드셨더라면 아버지는 간을 다쳐 70세도 못 넘겼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함께 나누고 배려하는 공생·상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되새기게 한다. 혼밥·혼술의 시대에도 나눠먹기는 좋은 가치임이 틀림없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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