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임박한 정권 교체에 좌불안석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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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5   |  발행일 2017-04-25 제30면   |  수정 2017-04-25
[취재수첩] 임박한 정권 교체에 좌불안석

“지금 상황이 안 좋아서 저 빨리 (외국으로) 나가야 됩니다.”

외국 기관 파견 근무를 신청한 기획재정부의 한 과장급 공무원이 기자에게 한 얘기다. 이른바 TK(대구·경북)라인으로 분류되는 이 공무원은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커지자 일찌감치 외국 기관 파견 신청을 했다. 이 공무원처럼 몸을 피하지 못한 다른 TK 출신 공무원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란 전언이다. 심지어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 하에서 고속 승진을 한 일부 고위공무원들의 경우, 대선 전 퇴직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정권이 바뀌면 업무상·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유일호 경제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한 측근 인사는 “부총리님이 다시 국회에 입성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그래도 기업체에 자문역으로 돈 받고 가면 절대 안 된다고 단도리를 쳐놨다”며 “나도 한 1년 정도 쉴 생각이다. 요즘 가능하면 부총리님하고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박근혜 정권 인사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보수 정권 내내 한직을 맴돌았던 한 고위 공무원은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소문이다. 친노(친노무현 대통령)계 인사란 꼬리표가 붙어 보수 정권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 인사는 ‘복수의 칼’을 휘두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또 국무총리실의 한 고위 간부는 기자에게 “과장급 이상 공무원 중에 상당수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몰려 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캠프측과 접촉해 ‘살길 찾기’에 나섰다는 의미다. 관가에서 도통 들을 수 없었던 전라도 사투리도 여기 저기서 들린다. 지난 2년 동안 정부세종청사를 출입하면서 수많은 공무원과 통화를 했지만,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격세지감이다. 정권이 바뀌긴 바뀔 모양인가 보다.

정권 교체는 공무원 사회에 태풍이다. 특히 정무직이나 국장급 이상 고위 관료들에게는 거의 지진급이다. 때문에 이들은 정권 교체 때마다 이전 정부와는 최대한 단절하려 하고, 새 정부 코드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의 탄생이다. 우리나라 엘리트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보여 주는 것이지만, 이런 행태를 무조건 비판만 하기도 어렵다.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이상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직사회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장관급을 비롯한 3급 이상 고위 공무원 1천500여명과 헌법기관, 검찰 고위인사 등 총 7천여명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최순실은 이 같은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에 기대어 공익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사익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국제기구에 파견될 예정이었던 청와대 근무 경력자가 정권 교체 이후 발령이 취소된다든지 직전 대통령 때 요직을 맡았다는 이유로 정권이 바뀐 뒤 계속 대기 상태로 있다가 결국 옷을 벗었다든지 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애국심과 소명의식만으로 공무원 생활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구경모기자<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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