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노래방 택시’ 운행하는 우병진씨

  • 최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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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5   |  발행일 2017-04-25 제29면   |  수정 2017-04-25
“어서오세요! 목적지까지 신나게 한 곡 하시죠”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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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진씨는 지난해 4월 자신의 택시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했다. 원하는 승객은 방음장치가 된 택시에서 언제든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노래방택시입니다. 선곡하세요.”

검은색 택시에 오르자 룸미러 부근에 달린 작은 전광판에서 ‘선곡하라’는 문구가 흘러나왔다. 차 천장에서는 가사가 나오는 작은 화면이 열렸고, 그 옆에 손바닥만한 미러볼이 눈에 들어왔다. 뒷좌석 선반 위로 손을 뻗자 노래방에서나 볼 법한 선곡 책자가 나왔다. 여느 택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겉모습이지만 내부는 색다름 그 이상이다.

‘노래방 택시’. 말 그대로 노래방에서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택시다. 노래를 부르는 건 승객의 자유. 비용도 따로 책정되지 않는다. 일반 요금만 내고 이동하면서 노래까지 부를 수 있는 택시다.

이 독특한 택시의 주인은 우병진씨(40). 지난 10여년간 택시를 운전해 오고 있다. 승객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면 우씨가 직접 대시보드에서 무선 마이크를 꺼내 건네준다.

방음장치에 고급오디오 갖춰
10명이 타면 한두명정도 불러
단골까지 10여명 생겨
페이스북 생중계하는 손님도
“대구시민의 작은 기쁨 됐으면”


우씨가 택시에 노래방 기계를 단 건 지난해 4월이다.

“평소 노래 듣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차에 기본적인 오디오 설비는 해 놓고 있었는데, 혼자 노래를 듣기보다 손님들도 같이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노래방 기계를 달기로 했어요.”

노래방 기계는 우씨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택시를 몰면서 처음엔 낯을 많이 가렸어요. 승객들한테 인사만 하고 그 이후에 말도 안 걸었어요. 그런데 노래방 기계를 설치하면서 점점 친화력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승객들이 노래를 불러주면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저도 쉴 때 차 세워놓고 부를 수 있고요.(웃음)”

단골손님은 10여명. 한 단골은 대구에서 김천까지 가면서 일부러 우씨의 택시를 불렀다.

“자주 전화해 어디있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어요. 택시 타면서 노래도 부를 수 있으니까 근처에 있고 시간대가 맞는 단골손님들은 제 택시를 타려고 하죠.”

하지만 우연히 탄 승객들이 마이크를 선뜻 잡는 일은 드물다.

“10명 중 1~2명 정도만 노래를 불러요. 주로 젊은 사람들이죠. 아무래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창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의외로 노래를 듣는 저는 아무 생각없는데 말이에요.”

그러다보니 승객이 마이크를 잡도록 유도하는 우씨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택시에 타면 연령대를 파악한 뒤 세대에 어울리게 노래를 틀어요. 중장년이 타면 트로트, 젊은 사람은 최신 가요. 그러면 어느새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분들이 꽤 있죠. 그때 ‘노래 한 곡 하겠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전부 노래를 부르겠다고 흔쾌히 답하는 건 아니지만, 몇 분은 좀 편하게 여기고 그때부터 노래를 부르죠.”

독특한 노래방택시의 매력만큼 기억에 남는 손님들도 꽤 있다.

“아무래도 잔돈 됐다는 손님들이 제일 기억에 남죠.(웃음) 그만큼 기분 좋으셨다는 의미니까. 예전엔 한 중년 남성분이 요금 4천원 나왔는데 1만원 주더라고요. 잔돈 드리려고 하니까 ‘기분 좋게 잘 왔다. 잔돈 값어치는 했으니 괜찮다’고 했어요. 엄청 뿌듯했죠. 그 밖에 택시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한 손님도 있었고요.”

택시 안을 구석구석 뜯어볼수록 우씨의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노래가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설치한 방음장치부터 고급 오디오까지. 차 천장에 달린 미러볼은 차량용이 없어 휴대폰용을 산 뒤 개조했다. 최근에는 조명이 들어오는 탬버린을 비치하는 걸 고민하고 있다.

“재미있지 않아요?(웃음) 승객들이 어차피 이동할 거리를 제가 조금 노력해 더 재미있게 갈 수 있으면 손님도 좋고, 저도 보람있죠. 이게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노래방택시가 더 많이 알려져서 대구시민의 일상에 작은 기쁨이 됐으면 좋겠어요.”

글·사진=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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