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가 버린 담뱃불 꺼 내 주머니 넣었죠”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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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4 08:09  |  수정 2017-04-24 08:09  |  발행일 2017-04-24 제29면
[이 사람] 정휘수 수성백년문화대학장
“젊은이가 버린 담뱃불 꺼 내 주머니 넣었죠”
정휘수 수성백년문화대학장은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노인이 존중받으려 해선 안 된다”며 “뉴스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노인 같은 젊은이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젊은이 같은 노인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이는 나이가 들어도 청년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젊은이라도 노인 같은 현명함과 지혜를 갖추라는 뜻일 게다.

대구수성시니어클럽 수성백년문화대학(학장 정휘수·대구시 수성구 무열로 167) 건물 2층 계단에는 고대 철학자 키케로의 글귀가 붙어 있다.

수성백년문화대학은 2014년 문을 열었다. 건물 1층은 대구수성시니어클럽 사무실이고, 2층엔 강의실·사무실·휴식공간으로 돼 있다. 이 대학을 이끄는 정휘수 학장(72)을 최근 만났다. 그는 94세 노모를 모시고 함께 산다.

청년들 본 되는 삶 살자 생각
2011년부터 新노인운동 벌여
“기술 진보하는데 안주땐 꼰대”
미디어 비판정신 기르기 위해
영상미디어 동호회 활동까지
스킨스쿠버 등 자격증 여러개
유람선 승객 200명 구한 적도

“문경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지금도 ‘차조심 해라’ ‘밥 많이 먹어라’ 하며 늘 자식 걱정을 하십니다.”

그래서일까. 정 학장은 스스로 ‘늙었다’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건 어머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불효이기 때문이다.

정 학장은 영남대 화공학과를 졸업한 뒤 성광고 등에서 기술공업 과목을 가르치며 4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했다. 그사이 자격증도 여러 개 땄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비롯해 컴퓨터교육, 화공기술사 자격증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홍도에 갔다 유람선의 스크루에 어망과 밧줄이 감겨 침몰 직전이었을 때 스쿠버다이빙장비를 챙겨 칼을 문 채 바닷속으로 들어가 밧줄을 끊어 200여명의 승객을 구조해 전국에 방송을 탄 적도 있다.

정 학장은 퇴직 후 인터넷 라디오 작가 겸 DJ, 문화유산해설사, 색소폰 연주 활동 등을 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다 우연히 대구 수성시니어클럽을 이끌게 됐다. 2011년엔 전국시니어클럽 일하는노인연합회 회장도 맡았다. 그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신(新)노인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운동은 노인이 대접 받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솔선수범해 청년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살자는 일종의 노인의식개혁 캠페인이다.

“한 번은 대구 범어네거리에서 차를 타고 가다 신호대기를 하는데, 차창을 열고 한 젊은이가 담배꽁초를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나무랐더니 급히 차를 가로막고선 ‘당신이 뭔데’라며 대들더군요. 그때 ‘아! 이렇게 해선 설득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이후 범어네거리에서 똑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땐 도로에 버린 꽁초를 주워 담뱃불을 끄고 제 주머니 속에 넣었죠. 뒷거울을 보며 제 행동을 관찰하던 젊은이가 미안해하며 머리를 긁적이더군요.”

그는 이 일을 겪으면서 말보단 실천이 앞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존중하라고 강요하면 안 돼요. 나이 값을 하려면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늙은이의 장점이 지혜와 경륜인데 젊은이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특히 정보의 홍수 속에 신문·방송 등 미디어가 전달하는 뉴스의 진위를 가릴 줄 아는 안목이나 식견이 필요합니다. 글을 읽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해석할 수 없다면 문맹이나 다름없어요. 가짜뉴스와 진실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언론이 떠먹여주는 뉴스를 그대로 받아먹으면 그건 ‘문화죽’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모르게 비판 정신이 사라지고 세뇌 당해 ‘좀비늙은이’가 되는 거죠.”

그는 신문도 하나만 보면 편견을 가질 수 있으며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지각하게 돼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맹신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또 기술은 계속해 진보하는데 과거의 생각과 관념에 안주하면 ‘꼰대’가 돼 지탄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정 학장은 노인들이 미디어문맹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미디어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정 학장은 이런 점에 착안해 작년부터 수성시니어클럽 2층 교육장에서 65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카메라, 캠코더,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영상제작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청춘영상미디어 동호회를 만들었다.

“전직 교수와 교원, 퇴직 공무원, 사업가 등으로 구성된 회원이 15명 정도 됩니다. 전문강사를 초청해 지난해 10월12일부터 매주 1회 2시간씩 동영상 제작 앱인 키네마스터 사용법 같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시니어들도 SNS와 같은 뉴미디어환경에 적응하고 적극 활용해야 청년을 바른 길로 계도하거나 설득할 수 있습니다.”

정 학장은 올해 중 범어네거리 인근으로 미디어교육 문화공간을 옮길 예정이다. 그는 청춘영상미디어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대구 수성구청 등 관계기관이 협조해 주길 바라고 있다.

“얼마전 여행을 갔는데, 스마트폰으로 풍경을 찍은 뒤 앱을 활용해 음악과 자막을 넣어 카톡으로 손자들에게 보여줬는데 좋아하더군요. 영상미디어관에서 시니어들이 직접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찍는 수준까지 가는 게 목표입니다. 노인들이 뉴미디어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늘 깨어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게 세대간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고요.”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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