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젊은 천재와 나이든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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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4 07:53  |  수정 2017-04-25 13:31  |  발행일 2017-04-24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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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설치미술 작가>

책 주변에 있으면 즐겁고 마음이 편해져서 책을 좋아한다. 서점에서 예술책들 사이에 있으면 진짜 예술가가 된 듯 예술적 아이디어가 쉽게 생기고 철학책들 사이에 있으면 철학자가 된 듯하다. 외국어책 사이에 잠시 머무를 때면 마치 곧 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그 나라에 갈 것만 같은 착각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지적 허영심으로 ‘old masters and young geniuses(젊은 천재와 나이든 장인)’라는 책을 내용도 보지 않고 제목에 매료돼 몇 해 전 충동구매를 했다.

처음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나는 ‘과거엔 예술가들을 대부분 마스터라고 불렀다면 지금은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이른 나이부터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작업하는 작가가 많아서 젊은 천재들이라고 부르는 것일까?’라는 상상으로 혼자 어떤 작가를 마스터라고 부를지, 어떤 작가를 천재라고 부를지 리스트를 적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소설 같은 생각을 하다가 요즘은 그 책 제목이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예전엔 젊은 작가들이 마스터가 될 수 있었지만 현재엔 젊은 작가가 마스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스터가 된 후에 우리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천재였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원하든 원치 않든 ‘생각’까지도 공유되기를 강요받게 되는 현대인들이 마스터가 될 수 있긴 할지 의문이 들었다. 많은 천재들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다가 평생 본인들이 천재였는지도 모르고 살아 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오늘날 젊은 천재에서 마스터로까지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겁쟁이, 무모한 사람, 혹은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주변인들로부터 오해는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창의성 자체를 의심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것이 그들의 창의성을 의심받는 것보다 견디기 더 쉬웠을지 모른다.

운 좋게도 우리는 젊은 천재가 마스터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지만 우리 다음 세대들은 그 과정을 점점 보기 힘들어질 것 같다. 얕은 지식과 식견으로 무장된 이상한 정의심과 윤리관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정의의 사도가 된 듯 악플로 만들어진 여론을 무기삼아 그들을 의심하고 그 여론에 속은 어리석은 자들은 마스터가 될 젊은이들을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범죄의 꼬리표를 붙인다. 나 같이 천재도 미래의 마스터도 될 사람이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진짜 마스터가 될 사람들이라면 본인 스스로도 의심하게 되는 천재성으로 마스터가 되는 길은 더욱 잔혹한 길이 될 것이다. 박정현 <설치미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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