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하나의 소설이 다르게 읽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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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2   |  발행일 2017-04-22 제23면   |  수정 2017-04-22
[토요단상] 하나의 소설이 다르게 읽힐 때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는 모임에서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못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작품의 의미와 효과에 대한 의견이 정반대로 나뉜 것이다. 삶의 한 단면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서사문학 장르라고 정의되는 단편소설의 주제를 두고 의견이 상반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법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알바생 자르기’는 알바생으로 일하다 해고되는 성혜미라는 여성의 이야기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녀는 별로 하는 일도 없어 주로 인터넷을 뒤적이며 홀로 시간을 보낸다. 칼퇴근은 기본에 지각도 잦은데 근무시간 내에 병원에 다닌다. 이른바 근태 불량인 셈이어서, 신임 사장이 최은영 과장을 통해 그만두게 한다. 사태가 다소 의외로 진전되는 것은 여기부터다. 식사를 사 주며 해고 결정을 알렸던 은영이 선물을 주면서 이별 인사를 건넸을 때, 혜미가 관련 규정을 들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 결과, 알바생도 일정 시일 근무 시 한 달 전에 서면으로 해고를 통보해야 하며, 퇴직금을 주어야 하고, 4대 보험 미가입 시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등의 관련 규정을 모르고 있던 은영이, 규정에 있는 권리를 차례차례 챙기는 혜미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고, 보험 문제 관련해서는 자기 돈으로 합의금까지 주게 된다. 서로 헤어지는 순간 은영이 “이게 처음부터 다 계획이 돼 있던 거니”라고 묻자 말문이 막힌 듯이 잠시 멈칫하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혜미의 궁한 사정이 제시되면서 소설이 끝난다.

혜미의 스토리에 주목할 때, 비정규직에게 행해지는 각박한 처사와 그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혜미를 두고 ‘계획’ 운운하는 중간관리자의 허위의식 또한 포착해 볼 수 있다. 학생들의 반이 이런 식으로 읽어 이 소설이 비정규직 문제를 폭로한다고 파악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인간적인 호의를 가진 은영이 알바생 혜미에게 호되게 당하는 이야기로 이 작품을 읽었다. 주제를 전혀 다르게 파악한 것이다.

학생들이 서로 상반되게 이 소설을 읽은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중심 스토리는 혜미의 일이지만 그것이 모두 은영의 시점에서 서술된다는 사실이다. 혜미의 행태가 은영의 눈에 띈 대로만 그려지고 그녀의 심정에 의해 해석되며, 서술의 초점 또한 은영의 생각과 심리에 맞춰져 있다. 그 결과, 내용이 담고 있는 사건 곧 혜미의 상황에 주목해서 해석하면 알바생의 비애를 폭로하는 것이 되지만, 작품의 형식대로 읽어 가면 자신의 권리는 확실히 챙기되 이른바 조직생활에서의 적극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 젊은 알바생에게 뒤통수를 맞는 중간관리자의 애환을 드러내는 소설이 된다.

이렇게 ‘알바생 자르기’의 주제가 상반되게 파악되는 바탕에는 ‘내용과 형식의 괴리’라 할 문제가 놓여 있다. 이 소설이 실린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는 ‘작가의 말’도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이러한 사정이 확인된다. 장강명의 고백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이 ‘교활한 서민층 어린애한테 걸려 고생하는 착한 중산층 여자 이야기냐’고 물어 당황스러운 나머지 혜미의 사정을 알려주는 마지막 문단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경제와 건강 면에서 어려운 혜미의 처지를 제시함으로써 그녀를 나쁘게 보지 않게 하고, 은영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던 자신의 의도를 읽어 주기 바란 것이다. 학생들의 입장이 갈린 것을 보면, 내용과 형식의 괴리가 여전하기 때문에 작가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듯싶다.

내용과 형식의 관계로 해서 하나의 단편소설이 달리 읽힐 수도 있으며,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실제가 어긋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 준다는 데서 ‘알바생 자르기’ 읽기의 재미가 한층 커진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우리가 읽어 내는 이 소설의 모습이 어쩌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를 말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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