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세상에 대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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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8 07:54  |  수정 2017-04-18 09:26  |  발행일 2017-04-18 제25면
20170418
박지혜 <영상서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영상을 편집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요?’

사람들에게 다큐영상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없어 영상을 하는 친한 선배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편집기술이나 이야기에 대한 답변을 예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선배는 예상 밖의 말을 나에게 남겼다. “그 사람의 머릿속에 든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말은 수업이 끝난 후까지 나에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몇 년 동안 영상을 만들면서 내가 느꼈던 바를 모두 담고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은 영화들은 재미난 공통점이 있었다.

그 작품을 보고 난 후에 세상이 그전과는 달리 보인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신기했고, 한동안 그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했다. 한참 지난 후에야 나는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영화를 만든 사람의 시선이 나를 물들였기 때문이었다. 즉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작가의 시선이 나에게 이어지는데 내가 항상 세상을 보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이 보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보는 세상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같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분명한 착각이다.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의 것과는 얼마나 많이 다르던가.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들은 다 다르게 판단하고 바라본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은 다른 경험을 만들어내고, 이런 경험들이 모여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각각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세계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 내가 만드는 영상 등 모든 곳의 구석구석에 내 세계가 드러난다. 내 세계가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때문에 영상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화려한 촬영이나 편집기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만들어낸 나의 세계다.

나의 세계는 어떤 시선으로 물들어 있는가. 내가 가진 세계는 풍요롭고 행복한가, 아니면 빈곤하고 불행한가. 이런 질문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이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의 시선으로 만든 어떠한 작품이 세상을 더 풍요롭게도, 더 빈곤하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 만들어지는 수많은 공허한 작품들을 목도하면서 영상을 배우려는 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요즘이다. 박지혜 <영상서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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