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흥의 음악칼럼] ‘녹턴’ 쇼팽 작곡·다니엘 바렌보임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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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4   |  발행일 2017-04-14 제39면   |  수정 2017-04-14
사람에 대한 예의 없이는 그 음악의 가치는 의미 없는 게 아닐까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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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바렌보임.

얼마 전 지인과 즐겨듣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인은 최근 들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됐는데 어떤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한 좋은 오디오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질문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라디오 하나로도 얼마든지 좋은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지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고가의 오디오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고 4천장에 가까운 CD와 9천장이 넘는 LP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껏 그 정도의 대답밖에 해 줄 수 없느냐는 표정이었다. 사실 이럴 때마다 난감하다.

사람들은 좋은 오디오와 좋은 음악은 함께한다고 믿는다. 좋은 오디오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의문이지만 행여 있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좋은 오디오로 좋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 것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좋은 소리는 다른 이에게 좋은 소리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디오의 소리와 좋은 음악은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오디오에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소위 원음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오디오를 새것으로 바꾸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오감 중 청각은 가장 만족시키기 어려운 것이라서 원음을 찾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한때 좋은 오디오를 자랑한 적이 있다. 수천만원대의 스피커와 그것조차도 뛰어넘는 가격의 앰프, 그리고 CD, LP 플레이어와 튜너까지 소리에 대한 집착으로 밤을 새운 적이 많았다. 오디오 가게에서 갖고 싶은 스피커를 앞에 두고 멍하니 서 있다 발길을 돌리고 나서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무리해서 산 일이며 프리 앰프를 교환하기 위해 대구에서 강원도까지 밤길을 달려간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소리에 대한 갈증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젊은 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신념은 오디오에 대한 집착으로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았다.

좋은 오디오란 값이 비싸고 화려한 기기가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듣는 기기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마흔이 넘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다 만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문득 한없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트레커들이 버리고 간 컵라면 빈 용기에 흙을 담아 작고 고운 꽃을 피우던 아이들, 지친 여행자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뜨거운 야크 차를 건네던 사람들에게서 더 가지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리던 자신의 욕심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고가의 오디오를 모두 처분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에 비해 너무도 소박한 오디오로 그야말로 좋은 음악을 아무런 갈증 없이 큰 기쁨으로 듣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지인은 약간은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도 좋은 음악은 좋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그와 함께 다니엘 바렌보임이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을 들었다. 바렌보임은 피아니스트로 시작해 지휘자로 명성을 쌓은 유대인 음악가다. 그는 또한 음악적인 요소보다는 음악 외적(음악과 관련되어 있기는 하다)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영국이 낳은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남편으로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소병을 앓던 아내를 버린 비정한 남자였다. 더구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아내는 바렌보임과의 사랑을 위해 유대교로 개종까지 한 사람이었다. 바렌보임은 음악과 개인적 삶은 다르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금기시된 바그너의 곡을 연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그너는 반유대 주의자로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면서 그의 곡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유대인들에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음악가였기에 바렌보임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바렌보임은 바그너가 음악계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고 그의 작품에서 반유대적인 생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사과를 거부했다. 음악작품의 탈정치화라는 그의 논리는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그가 2011년 27년 만의 내한공연에서 보여준 태도는 그가 말하는 탈정치화의 이면에 숨어있는 선민의식을 엿보게 한다. 그는 소위 오늘까지 분단으로 점철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임진각에서 8월15일 콘서트를 개최하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전에 10·11·12·14일 예술의 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 그러나 14일 연주에서 1악장이 끝나고 난 뒤 덥다며 무대에서 퇴장한 뒤 10분 이상을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한국 청중보다는 자신의 이념이나 이상이 더 소중했는지 모른다. 음악가에게 음악 이외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가 역시 사람에 대한 예의 없이는 그 음악의 가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다시 봄이다. 지난겨울, 찬 바다를 떠돌던 바람이 이제 막 올라와 다시 하얀 목련을 피우는,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가슴속 깊이 감추어 두었던 부끄러움의 깊이를 조심스럽게 들추어 보게 되는 그런 봄이다. 살면서 그 누구도 아무런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자신의 삶에 당당했노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타인의 시선이 갖는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부디 그리운 이들은 그리운 사람에게로,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봄이었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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