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전략적 선택에 대한 소고

  • 조정래
  • |
  • 입력 2017-04-14   |  발행일 2017-04-14 제23면   |  수정 2017-04-14
[조정래 칼럼] 전략적 선택에 대한 소고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 10일 “이번 대선에선 대구·경북(TK)이 대선 승패를 판가름나게 하는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시민들의 투표를 독려하는 한편 TK의 위상을 알리면서 대권주자들에게도 지역의 주가를 높이려는 다목적성 발언이다. 지방정부 수장이자 정치인으로서 지역의 이익을 챙기는 차원에서 응당 던질 수 있는 메시지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매우 민감한 멘트이고, 자유한국당 소속 당원으로서는 오해를 살 정도로 수위를 넘어섰다. 권 시장의 훈계는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단순하게는 시쳇말로 ‘절 모르고 시주하지 말자’는 실리적 선택의 촉구나 다름없다.

전략적 선택이 이번 대선판 TK의 화두로 떠올랐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6번의 대선에서 주도적이고 예측 가능한 표를 던져왔던 TK가 사상 처음으로 고심의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다. 실제 TK의 보수층 상당수가 ‘반문’이나 ‘대안론’ 등에 편승하거나 지지를 보내는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외지의 시각은 TK가 선택을 ‘강요’ 당하고 있다고 본다. 주연 아니면 최소한 조연이었던 TK가 어쩌다 신인으로 전락하게 됐고, 잘못 선택했다가는 국물도 없다는 식의 협박까지 받게 됐나.

TK의 전략적 선택이 하나의 굵직한 흐름을 이루는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전략의 뿌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 근저에는 과거와는 달리 정치적 이유는 잘려나가고 대신 경제·사회적 고려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차기 정부에서 인사와 지역개발 등에서 소외되고 물을 먹을 수 있다는 걱정 말이다. 하지만 그같은 우려는 도식적이고 일차원에 머문다. 선거를 정치 외적 구도로 접근하는 전략과 전술은 심모원려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멀다. 현실적이고 냉정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하다. 지역주의에 의한 인사로 인한 불이익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실제 그런 소외는 이미 김대중·노무현정부는 물론 YS정부에서도 혹독하게 경험한 바 있다. 현재 호남과 PK는 문·안 간 박빙의 차이로 팽팽한 지지를 보내면서 대선전을 주도하는 반면 TK는 수세지역으로 분류돼 지역개발 공약 등에서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처럼 전략적 선택은 외생적인 정치적 프레임이지 TK 고심의 산물은 아니다.

TK는 이쯤에서 다시 한 번 고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캐스팅 보터 역할과 전략적 선택이 과연 국가와 지역을 위해 바람직한지 심층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몰표보다는 표의 분산, 황금분할이 오히려 TK의 전략적 선택에 더 가까울 공산이 크지 않은지 뒤집어 보고, 지역의 정치적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서는 차기보다는 차차기를 대비한 미래지향적 지지도 중요하지 않은지 내다보기도 해야 할 터이다. 이것저것 복잡다단한 계산을 떠나 지역의 정체성을 살린 투표가 넘어진 김에 쉬어 가듯 내생적 역량을 기르는 차선책으로 삼을 만하다. 어떤 선택이든 섣부른 전략적 선택의 위험성과 퇴행성은 경계되고 배제돼야 마땅하다. 시쳇말로 TK가 표만 몰아주고 전리품을 거의 챙기지 못하는 불상사도 상정해봐야 할 시점이다.

전략적 선택은 사표를 방지하려는 심리의 가세로 종용을 받지만 주체적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기권의 조력자로 작동한다. 참으로 좋지 않은, 나쁜 선택이라 할 수도 있다. 유권자들의 이러한 고뇌는 제도, 즉 결선투표제의 도입으로 해소돼야 한다. 이 제도는 연대와 연정까지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다양성과 다당제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안성맞춤인 제도다. 그러나 기성 정치권은 아직도 여전히 진영과 지역, 기득권 논리에 빠져 인위적 단일화, 소수 정당 후보 사퇴 종용 등으로 승자독식의 후진적 정치문화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형국이지만 지금 당장은 도리가 없다.

빠짐없는 투표 없이는 전략도 선택도 불가능하다. 방황하는 보수층의 기권 우려가 여전히 높다. 전략적 선택이든, 반 전략적 선택이든 사표란 있을 수 없다. 내가 던지는 한 표가 당장 승자의 편에 서지 못하더라도 정치발전을 위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고심에 찬 투표가 바로 전략적 선택이다. 논설실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