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보수 후보 단일화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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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2   |  발행일 2017-04-12 제31면   |  수정 2017-04-12
[영남시론] 보수 후보 단일화의 덫
박상병 정치평론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19대 대선의 큰 그림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갈수록 ‘양강 구도’가 뚜렷하다. 물론 한국의 ‘대선 시계’로 본다면 한 달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그간의 탄핵정국 여파로 각 당의 준비가 늦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한 달은 너무 짧다. 그렇다 보니 각 정당과 정파 간의 선거공학적 행보가 국민의 관심을 받기 어렵게 됐다.

정치권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국민이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이 그렇고 최근의 대선후보 구도마저 국민이 먼저 판을 짜버리는 모양새다. 자칫 어정쩡하거나 좌고우면이라도 한다면 골든타임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그만큼 대선정국의 바닥 민심은 정치권의 체감보다 더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바른정당이 옛 새누리당으로부터 탈당할 당시 두 정당의 통합 문제는 최대 화두였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그 결과와 무관하게 통합 또는 최소한 ‘보수 후보 단일화’가 가능할 것으로 봤다. 당내 경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들이 대부분 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외친 것도 그런 배경이었다. 물론 바른정당에서는 통합은 물론 후보 단일화조차 거부하는 기류가 적지 않았지만 유승민 후보는 보수 후보 단일화를 주장했으며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그렇다면 지금쯤은 그 성과가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후보 단일화 논의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 같은 기류가 역력하다. 아니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양측의 공방전이 뜨겁다. 후보 단일화 논의를 위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측에 친박인사들에 대한 인적청산을 요구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유승민 후보는 “그런 사실 없다”면서 논의 자체에 쐐기를 박았다.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는 바른정당에 비해 정치적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정당의 역사와 정통성 그리고 물적, 인적 자산까지 합친다면 바른정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게다가 ‘태극기 부대’로 통칭되는 정치세력은 그들의 중요한 지지기반이다. 친박 청산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통합을 하든, 후보 단일화를 하든 바른정당을 흡수통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친박 청산을 거부하면서도 줄기차게 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요구한 것이다.

반면 바른정당과 유승민 후보는 정치적 대의명분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당세가 취약하다. 정치적 대의명분으로 보자면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에 침묵하지 않았으며 ‘친박 패권주의’에도 과감하게 맞서 탈당까지 결행한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보수정치의 명분은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들이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정치는 실리도 중요하지만 대의명분이 더 중요하다.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세력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여론에 살고 여론에 죽는 대선정국이다. 따라서 정치적 명분을 쥐고 있다면 더 선명한 행보를 했어야 했다. 그래야 당장은 힘들지만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른정당과 유승민 후보는 자충수가 너무 많았다. 특히 경선과정에서 ‘보수 후보 단일화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의 덫에 걸린 형국이 됐다. 뒤늦게 방향을 틀고 있지만 이미 때를 놓친 모습이다. 그렇다 보니 제3지대에서의 ‘빅텐트’ 구상도 사실상 동력을 잃고 말았다.

이제 바른정당과 유승민 후보는 좀 더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 대선은 물론 그 이후까지도 치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상 이번 대선정국에서는 이렇다 할 모멘텀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와의 소모적이고 구태의연한 정쟁을 할 때가 아니다. ‘바른정당의 가치’와 ‘유승민 후보의 길’을 충실하게 보여주면 된다. 때가 아닐 때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바른정당이 제일 강한 것, 그것은 정치적 명분과 미래가치이며 동시에 보수의 혁신이 아닌가. 그 내용을 정책에 담아서 국민과 소통하면 된다. 국민만 보고 미래와 가치를 말하되, 그다음의 것은 국민에게 맡기면 된다. 그 길이 옳고 정의롭다면 국민이 먼저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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