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이성계의 ‘유린청’과 나폴레옹의 ‘마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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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1   |  발행일 2017-04-11 제31면   |  수정 2017-04-11
[CEO 칼럼] 이성계의 ‘유린청’과 나폴레옹의 ‘마렝고’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말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반려동물 중 하나다. 일반인은 ‘말’하면 정형화된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믿기지 않겠지만 ‘말’ 백과사전에 의하면 지역에 따라 200여 가지 품종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도 제주 조랑말이라는 품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주마와 마장마술에서 활약하는 승용마가 다른 품종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경주마는 영국에서 개량을 통해 달리기에 최적화시킨 ‘서러브레드’라는 품종, 승용마는 ‘웜블러드’라는 품종이 대표 말로 자리 잡았다. 승용마의 경우 자국의 재래종 혈통을 보호·육성하며 수출을 통해 톡톡한 경제적 효과를 누리고 있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유소년 승마 보급을 위해 한동안 오스트리아 산악지대에서 나고 자란 ‘하프링거’를 대거 수입했다. 크림색의 하프링거는 약간 작고 아름다운 외모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적당한 크기로 초보자나 청소년, 여성들의 승마에 적합한 말 품종이 있다. 바로 ‘한라마’라는 품종이다.

경주용 ‘서러브레드’와 ‘제주마’의 교배를 통해 생산된 한라마는 등높이가 140㎝ 이하로 작고, 지구력이 좋아 특히 초보자용 승용마로 적격이다. 거기에 털 색도 40가지가 넘어 다른 개성을 뽐낸다. 전문가들은 ‘한라마’의 적극적인 품종 개발과 혈통관리, 순치가 이루어진다면 ‘하프링거’ 못지않은 수출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과거 한반도에도 여러 품종의 말이 있었다. 삼국시대의 ‘과하마’ 외에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언급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를 도왔다는 여덟 마리의 준마 ‘팔준’을 통해 한반도 곳곳에서 말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덟 마리 중 ‘유린청’ ‘발전자’ ‘용등자’ ‘현표’ 네 마리가 함경도산이고, ‘응상백’은 제주산, ‘사자황’은 강화산이다.

그밖에 여진산인 ‘횡운골’과 ‘추풍오’도 있는데 왕이 가장 사랑한 말은 함흥산 명마 ‘유린청’이다. 화살을 세 개나 맞고도 끄떡없이 싸운 투혼을 가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의 명마로, 죽음을 맞았을 때 석관을 짜서 묻어주었다고 전한다.

한편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할 때 알프스를 넘었던 사실을 기념한 다비드의 작품인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에는 멋진 위용의 아랍말 ‘마렝고’가 등장한다. 나폴레옹을 태운 백마가 두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는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 덕분에 아랍말의 우수성을 광고한 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자국에 존재하는 ‘브르통’ ‘아르드네’ ‘아리에주아’ ‘불로네’ ‘페르슈롱’ 등 다양한 품종의 말을 세간에 기억시킬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조선과 프랑스의 두 군주가 선택한 말 품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3월25일 한국 경마사상 처음으로 서러브레드 경주마 ‘트리플나인’이 꿈의 무대라는 두바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더 기분 좋은 사실은 ‘트리플나인’이 제주에서 나고 자라 훈련까지 받은 국내산 마필이라는 점이다. 서러브레드라는 품종은 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국내산으로 이미 80% 정도를 수급할 만큼 성장해왔다.

또한 체격이 작고 지구력이 뛰어난 제주마를 기반으로 ‘한라마’와 같은 다양한 품종을 개량하여 아직은 불모지에 가까운 승용마와 관상용마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말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태조 이성계처럼 우리 말 품종, 말 산업에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면 한국의 말산업은 보다 일찍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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