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성장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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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0   |  발행일 2017-04-10 제30면   |  수정 2017-04-10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체험
자기를 성찰할 귀중한 기회
두렵지만 어둠에 머무는 건
참다운 내가
그 안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
[아침을 열며] 성장의 변증법
박 소 경 호산대 총장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 (윤동주 ‘자화상’)

명경(明鏡)을 안다면 예순을 넘겼을 것이다. 어릴 때 어른들은 거울을 명경이라 불렀다. 맑고 깨끗해 명경 같은 물, 윤동주는 그 물(마음)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본다. 한없이 어두웠던 시절, 비극적 현실에서 청년은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고뇌를 시로 승화시켰다. 일찍 완성된 시인은 일찍 떠나고 만다.

헤겔은 정신현상학과 변증법으로 대철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플라톤에서 시작된 변증법을 헤겔은 어떻게 재창조했나. 헤겔의 변증법은 단순한 정(正)·반(反)·합(合), 즉자(卽自)·대자(對自)·즉자대자(卽自對自)가 아니라 ‘상승하는 변증법’이라는 점이다.

원추 하나를 상상해 보자. 혹은 뾰족한 산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꼭대기를 향해 완만한 나선형을 그리며 올라간다 치면, 제 위치로 돌아왔을 때 처음보다 높은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두 번째는 더 높은 지점, 그다음엔 더 높은 지점이 될 것이다. 마음의 거울 앞에서 나를 관찰해보니 모순이 보인다. 반대편으로 가서 타자가 되어 다른 타자인 나를 다시 본다. 또 다른 모순과 갈등이 일어난다. 다시 앞으로 돌아온 나는 그전의 내가 아니다.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반성하고 사유한 만큼 성장하고 발전한 것이다. 모순과 갈등은 나를 점점 깊이 있는 인간으로 자라게 한다. 헤겔은 인간 정신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음을 상승하는 변증법으로 증명했다. 헤겔이 설명한 정신의 발전 과정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감각적 앎으로 시작한 인간 정신이 작은 원추들을 하나씩 만들며 올라가는데, 맨 마지막에 가서 보면 전체가 하나의 큰 원추 모양을 이룬다. 단순하고 본능적인 감각적 앎이 의식, 자기의식, 이성을 거쳐 참다운 정신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헤겔은 맨 마지막 단계를 정신이 정신 자신을 아는 경지로 절대적 앎이라 불렀으며, 이를 위대한 예술이나 종교적 경험보다 더 상위 개념에 두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더러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피한다. 우울해져서, 심하게는 병적이라 여기면서. 고통스러운 체험은 자기 성찰의 귀중한 기회이다. 카를 융은 자기 인식을 소홀히 하면 신경증에 걸리거나 몸에 이상이 온다고 경고했다. 융이 권하는 인격의 성숙은 무의식을 의식화해 나가는 방법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누구나 무수히 겪고 지나가야 하는 시련과 고통, 갈등, 절망과 상실의 아픔이 있다. 그 고통의 의미를 알아차리느냐, 모르고 지나가느냐는 순전히 나의 몫이다. “서구에 좌선에 비길 만한 자기성찰의 방법이 있다면 프로이트가 시작한 정신분석이다.” 내 마음속에 있으나 내가 모르는 마음-무의식, 내 안의 어두운 면-그림자를 내가 대면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게 된다. 무의식과 그림자의 내용물은 억누를 게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융은 말했다. 맨 밑바닥의 동물적 충동성과 어두운 부끄러움들부터. 나에 관해 알고 그런 나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뇌과학에서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사색과 성찰이 전두엽을 발달시키고 뇌의 노화를 막는다고 밝혔다.

타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관찰해나간 윤동주 시인은 헤겔의 상승하는 변증법으로 자신을 완성시켰다. 또한 헤겔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최고로 발전된 인간의 정신임을 천명했다. ‘나는 누구인가?’ 두렵지만 어두움에 머무른다. 그 안에 참다운 내가 있을지 모른다.박 소 경 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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