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휴고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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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7   |  발행일 2017-04-07 제40면   |  수정 2017-04-07
성공한 남성의 대명사…여성복에서도 로망이 되다
[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휴고보스
2017 FW에서 선보인 ‘휴고 보스’의 작품.
[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휴고보스
창업자 휴고 보스

비즈니스를 하는 남성에게 있어 딱 떨어지는 라인의 잘 차려 입은 슈트는 자신감을 북돋워줄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끄는 무기와도 같다. 그저 평범한 한 남성일지라도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모습은 평소보다 몇 배나 멋져 보일 만큼 슈트는 남성을 돋보이게 하는 의복이자 단순히 ‘옷’이라는 개념 이상의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남성복 브랜드에서 저마다의 슈트를 출시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휴고보스’의 남성 슈트는 고급 소재와 모던하고 깔끔한 라인으로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성공한 상류층 남성이 선호하는 고급 브랜드로, 휴고보스의 슈트는 일명 ‘성공한 남자들의 슈트’라 불리며 수많은 남성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1924년 재봉사가 만든 獨 패션 브랜드
초기엔 군복·유니폼·작업복 주로 생산
2차대전 후 남성복에 패션 개념 첫 도입
‘전문직 위한 개성적 패션’ 콘셉트 호평

1972년 F1 챔피언 후원 계기 인지도↑
할리우드 男스타들 최고 선호 브랜드
80년대엔 첫 남성 향수 ‘BOSS No.1’
2014년 여성복 첫 컬렉션으로도 주목

휴고보스에서 최근 ‘풀 캔버스 슈트’ 시리즈를 출시하며 기존의 슈트보다 더욱 고급화된 제품을 선보였다. 재단 장인들이 휴고보스를 위해 정밀하게 디자인한 이 풀 캔버스 슈트는 독일 메칭겐에 위치한 ‘휴고보스 테크니컬 센터’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혁신 기술과 장인의 테일러링이 결합된 하이클래스 제품이다. 이 풀 캔버스 슈트는 고객의 체형에 맞춰 수작업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슈트보다 제작시간이 두 배 이상 걸린다. 또 다양한 기후에 노출하여 개발된 이 풀 캔버스 슈트는 어떤 날씨나 환경에서 착용하더라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으며, 생산과정에서 모든 원단에 압력 스팀을 가해 슈트의 내구성을 강화시켰다. 이렇게 생산된 풀 캔버스 슈트는 착용하면 할수록 더 유연한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휴고보스는 창립자 휴고 보스가 1924년에 만든 독일의 패션 브랜드로 의류, 안경, 향수, 신발, 액세서리, 시계, 화장품 등을 제작 판매하는 브랜드이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군복이나 유니폼, 작업복 등을 생산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남성복에 패션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전문직 종사자를 위한 개성적인 작업복’이라는 콘셉트에 맞춘 남성복을 선보이며 명품 패션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남성복 시장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휴고보스는 정교한 재단과 특유의 절제된 라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창립자 휴고 보스는 1885년 7월8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근교 메칭겐에서 혼수용품 가게와 수공예품 공장을 소유한 아버지와 란제리, 리넨 가게를 운영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자퇴 후 3년간 상인이 되기 위한 직업교육을 받은 후 1902년 벤들러라는 직조회사에 취직하여 패션 관련 경험을 쌓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924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봉점을 열고 셔츠, 속옷, 유니폼, 작업복 등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휴고보스의 시초가 되었다.

1924년 1월 2명의 투자자로부터 지원을 받아 브랜드를 설립한 휴고 보스는 당시 20~30명의 재봉사를 고용하여 독일 메칭겐 지역에 커다란 의류 공장을 설립하고 속옷, 셔츠, 방풍재킷, 작업복, 레인코트 등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1929년 전 세계에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인해 파산위험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채권자들의 양해로 공장을 계속 운영하였다.

이어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그에게 기회가 되었다. 전쟁의 발발로 인해 그는 1931년부터 독일군에게 군복과 작업복, 레인코트 등을 납품하였고, 우체국이나 철도 직원을 위한 제복을 만들기도 하였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1938년부터는 제복, 유니폼 외에 기성복을 제작하며 생산품목을 확장하였고, 매출의 증가와 함께 그는 파산 위기를 극복하였다.

[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휴고보스
향수 ‘BOSS No.1’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를 파산위기로부터 구해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후 독일군에 유니폼을 납품한 전력으로 인해 휴고보스는 사람들에게 외면받게 되었다. 1948년 휴고 보스가 사망하면서 이 브랜드는 또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1953년 휴고 보스의 사위 오이겐 홀 리가 휴고보스를 맡아 남성용 정장을 선보이며 새 전환기를 마련하였고, 조금씩 예전의 명성을 되찾으며 1960년대 말에는 아주 높은 매출을 기록하였다. 이후 1967년 오이겐 홀 리의 두 아들이 경영권을 이어 받아 남성복에 집중하여 브랜드를 이끌어 나갔다. 군복 및 제복 생산으로 사업을 시작한 휴고보스는 완벽한 재단과 절제된 라인의 슈트를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두 형제는 이것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고급소재를 신사복에 적용하여 기존의 남성복에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패션성을 가미하였다.

휴고보스라는 이름이 전 세계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F1레이스의 챔피언 니키 라우다를 후원하는 스폰서로 참여한 이후부터이다. 이 선수를 후원한 계기로 브랜드 인지도 상승효과와 함께 휴고보스만의 강한 남성미를 창조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대량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1970년대 당시 독일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리며 전 세계에 슈트를 공급하는 최초의 브랜드가 되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휴고보스는 셔츠, 넥타이, 재킷 등으로 생산라인을 확장하였고, 1980년대 중반에는 ‘프록터 앤 갬블사’와 손잡고 첫 남성용 향수 ‘BOSS No.1’을 발표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다양한 향수제품을 선보이며 향수는 휴고보스의 주요품목이 되었다.

안경, 시계, 골프 컬렉션, 키즈, 홈 등으로 제품영역을 확대해 나가던 휴고보스는 여성복 라인을 추가하며 그룹의 매출이 10억유로를 넘어섰다. 오랫동안 남성복만을 생산해오던 휴고보스는 남성복의 콘셉트와 마찬가지로 성공한 삶을 꿈꾸는 현대적인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동시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보스 우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대만 출신의 디자이너 ‘제이슨 우’가 발표한 2014년 첫 컬렉션은 정확하고 깔끔한 디자인과 테일러링에 그만의 유연한 디자인이 더해져 당시 뉴욕컬렉션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컬렉션으로 호평받았다. 이를 계기로 남성복으로만 깊게 각인되었던 휴고보스가 여성복으로도 주목받게 되었다.

‘강한 남성미가 가미된 절제된 우아함’을 가진 휴고보스는 미국 할리우드 남성스타가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이자 전 세계 99개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실용성과 예술성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가장 독일적인 명품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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