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여성의 실패 vs 대통령의 실패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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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7   |  발행일 2017-04-07 제23면   |  수정 2017-04-07
[조정래 칼럼] 여성의 실패 vs 대통령의 실패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임한 유영하 변호사는 지난해 서울 검찰청사 앞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해 한동안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여성성 부각이 생뚱맞고 여성 전체를 모독하는 처사로 비판을 받았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가십거리를 양산해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여성을 앞세운 약자 코스프레가 변호인뿐만 아니라 박 전 대통령 본인과 측근들이 조장하거나 부추겨왔다는 점에서 인식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심각하고 안타깝다는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의 실패가 여성의 실패로 귀결되는 건 일반화의 오류다.

맞다. 수많은 여성 리더와 논객들의 비판처럼 여성의 실패는 아니다. 그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과 측근들의 실패이자 대통령의 뼈아픈 실패다. 페미니스트보다는 오히려 가부장적인 사고에 익숙한 필자가 다시 여성의 실패가 아님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아직도 번지수를 모르고 헤매는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아해들’의 무능이 너무나 안타깝기에 한마디 훈수나마 두지 않고는 병이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다운 편이어서 약한 여자를 보면 지켜주고 싶다” “법관이라면 약한 여자를 편 들어야” “여성 대통령에게 미용 시술 의혹에 대해 물으면 결례”. 그들은 여성성을 수단과 도구로 격하시키고 성을 농단하고 희롱했다. 그들을 선임하고 신뢰한 건 대통령의 실패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변호사가 아니라 정치적 지지자였다. 그들의 무능이 새삼 언론을 통해 집중 부각되고 지적되고 있다. 법리를 다퉈야 할 이들이 여성 프레임을 들고 나와 감성에 호소하려 하거나 태극기 집회에 나가 여론 악화를 자초해 왔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가 ‘박 대통령이 여성이란 성별을 방패로 이용해 왔다’고 보도했겠나. 한마디로 변호인들은 박 전 대통령을 변호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신념과 이념을 변호했다는 게 좀 더 설득력 있는 얘기다. 재판에 넘어가서는 변호사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제 와 변호사와 측근을 탓해 무슨 소용이 있나. ‘내 탓이오’가 바르다. 박근혜 개인의 실패이자 대통령의 실패다. 지금도 많은 국민은 최순실에게 휘둘린 박 전 대통령의 실체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의아해 한다. 그의 과거 이력을 보면 그렇게 무능하고 허무한 사람이 아니라고 고개를 강하게 흔드는 이들도 많다. 선거의 여왕이고, 무엇보다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패배 직후 바로 승복을 하고 퇴장하면서 자동차 앞에 드러누운 지지자들을 설복하던 그 의연함과 결기를 떠올릴 때면 우리는 더욱 가슴이 아리고 도무지 납득을 하지 못한다. 어쩌다 그의 이런 총체적 무능과 무지를 마주하게 됐는지 억장이 무너지고도 남는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자 수수께끼다.

애시당초 ‘여성’은 경제민주화와 함께 박근혜 캠프의 핵심 선거 전략으로 동원됐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란 슬로건은 박 후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작동됐다. 개인 박근혜를 여성 전체로 확장하면서 비판과 비난을 피해갔지만 그 당시는 어쨌든 성공한 선거전략이었다. ‘젠더가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전유됐다’고 규정되며 여성계가 반발하기도 했다. 여성성의 정치적 악용이라 할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여성 정치인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역시 여자는 안돼” “앞으로 100년 내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마”. 한 여성의 문제를 전체 여성으로 환원하는 우리 사회의 통념과 규범은 뿌리 깊다. 더 이상 여성을 성적으로 모독하지 말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성 팔이’를 당장 멈추고 대통령의 실패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대범함의 회복이 급선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면 여성 대통령이 아닌 여왕이 될 것’이라는 2012년 대선 토론 당시의 독설이 아프다. 박 전 대통령이 보여 온 불통과 일방향 질주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반(反) 여성이었다. 박근혜정부의 실패는 국가적 불행이지만 박 전 대통령 개인의 실패는 국민적 불행이다. 용서를 구하고 총체적 책임을 지는 당당함은 어디에 팔아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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