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금귀월래와 인구공유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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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6   |  발행일 2017-04-06 제31면   |  수정 2017-04-06
[영남타워] 금귀월래와 인구공유

지난해 4월 경주시 양북면으로 본사를 이전한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직원은 1천200명 정도 된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중 약 700명은 가족과 떨어진 채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다. 한수원 직원 10명 중 6명꼴이다. 때문에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28인승 버스 15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서울행 직원을 실어 나르고 있다. 주 5일은 근무지인 지방에서, 주말 이틀간은 가족이 있는 수도권에서 ‘이중살림’을 하는 것이다. 금요일에 가족이 있는 원 주거지로 돌아갔다가 월요일에 다시 근무지로 오는 금귀월래(金歸月來)는 김천혁신도시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김천혁신도시로 이전한 12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임직원은 5천여명이지만 전입 비율은 2017년 1월 기준 55%에 그치고 있다. 주민등록상의 이주율이 낮게 나타나자 김천시장은 급기야 시청 직원과 함께 공공기관을 돌며 주소이전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수학자 만델브로트는 1975년 프랙탈(Fractal) 이론을 내놓으면서 작은 구조는 전체 구조와 닮은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된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 단위에서 발생하는 금귀월래 현상은 프랙탈 이론처럼 지방 단위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경북도청 이전 1년을 맞아 도청 공무원의 신도시(안동 풍산면·예천 호명면) 이주 현황을 조사해 보니 이주율이 91%에 달했지만 10명 가운데 6명은 직원 혼자만 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역시 금요일 오후면 원 거주지이자 가족이 있는 대구로 돌아오고 있다. 도청 공무원을 위한 임대주택인 상록아파트와 주변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북적대지만 주말만 되면 유령도시로 변한다.

금귀월래를 공공기관 이전 초기현상으로 보는 낙관적인 부류도 있지만 아직은 우려의 시선이 더 많은 듯하다. 일부에서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희석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우려는 위 사례에서 보듯 ‘나홀로 이주’와 ‘주소이전 기피’에서 기인한다. 사실 경주나 김천에서 주 5일을 거주하고 있으면서 이틀만 머무르는 서울에 주소지를 두는 것은 주민등록법 취지에 어긋난다. 주민등록법 제6조 1항에 따르면 주민이란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 구역 안에 주소 또는 거소를 갖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귀월래 직원은 더 오랜 시간 거주하는 근무지 해당 시·군에 주민등록을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법의 모호성으로 인해 강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주소지를 옮기면 서류상의 인구가 증가해 세수나 예산 등에서 개선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렇다해도 나홀로 직원의 금귀월래와 주말 유령도시화를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지자체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달리 생각하면 예전 365일 황량했던 벌판이 이제는 일주일 중 네댓새라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가족이 함께 이주하고 주소이전까지 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서울특별시민’을 포기하는 건 그들에게 힘겨운 일일 수 있다. 더욱이 국가적으로 인구가 정체된 상황에서 지자체의 공공기관 직원 주소이전 캠페인은 결국 다른 지자체의 인구를 빼앗아 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종의 풍선효과마저 우려된다.

최근 전원주택의 개념이 진화하면서 시골·농촌 등에 도시민을 위한 주말형 세컨드하우스가 뜨고 있다. 주말형 귀농귀촌 역시 확산되고 있다. 도시에 주 주거지를 두고 시골이나 농촌에서 주말을 보내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생활수준이 향상될수록 도시에서 4~5일을 보내고 지방 시골농촌에서 2~3일을 보내는 도4농3, 도5농2의 이중생활도 늘 것이란 전망이다. 공공기관 직원과는 주말개념이 반대이지만 어쨌든 복수 주거시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떠나기만 하던 지방에 주 며칠이라도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금귀월래든 도5농2든 사실상 지자체 간 인구 공유(共有)가 이뤄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구공유시대에 걸맞은 제도 개혁이 필요한 때다. 주민등록법부터 손 좀 보면 안 될까.

변종현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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