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기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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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4   |  발행일 2017-04-04 제31면   |  수정 2017-04-04
[CEO 칼럼] 기억의 힘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독일의 뮌헨 근교에 있는 다카우는 1948년까지 강제수용소가 있었던 현장인데, 지금도 후대의 역사교육과 독일인들의 망각을 막기 위해 중요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다.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갔다가 현장을 보고 충격받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는 곳이기도 하다.

다카우에는 강제수용소에 끌려왔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 강제노역, 일상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또한 그들의 저항의 역사, 고통과 연대, 사랑과 연민 등을 읽을 수 있는 자취를 그대로 보관해 놓았다. “노동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글이 선명하게 주조된 철문을 통과해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뚫린 길의 마지막 끝에는, 시신이 쌓여 있는 사진으로 장소성을 드러내는 4개의 ‘화장터’가 있다. 이 화장터 입구에는 넝마같은 외투를 걸친 깡마른 사내의 초라한 모습의 조각상이 있는데 그 밑에는 “죽은 자에게는 명예를, 산자에게는 기억을”이라는 문구가 조각되어 있다.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강제수용소에서 행했던 독일의 반인륜적 범죄역사를 기억하자는 문구이다.

오전 6시의 일률적인 점호를 위해 밤사이 죽은 사람까지도 끌고 나와 점호를 시키고, 머릿수가 맞지 않으면 캠프에 있던 사람들 모두 개죽음을 당할 정도로 맞은 얘기를, 산 사람이 어느 정도의 얼음물 온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얼음물에 처넣고 10분마다 의사들이 측정했다는 얘기를, 병들고 기력이 없으면 가차없이 처분증명서에 사인하는 의사들의 얘기를, 독일의 대기업들이 가공할 만한 인명살상력을 가진 폭탄을 개발해서 나치정부에 보고하는 보고서를, 더 많은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강제징집을 하고 성공적인 기업수범사례로 나치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부끄러운 얘기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적나라하게 다 보여주고 있다.

독일에서는 어릴 때부터 본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자신으로부터 체화’하도록 철저하게 가르친다. 역사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나치’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패거리를 지어 타인을 비웃고 따돌리는 현상을 경계하는 교육을 배운다. 어릴 때 이런 분위기에서 배운 아이들은 더 성장해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배울 적에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나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해보는 과정에까지 자연스레 연결된다. 여기에 독일교육의 ‘기억의 힘’이 있다. 지금도 보통사람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칫 자라나기 쉬운 ‘나치의 기운’을 제재하는 힘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시민의 일상적 차원에서도 확산된다. 나치 때 태어나지도 않은 젊은이들이 키부츠로 봉사활동을 가기도 하고, 자기의 고장에서 유대인을 핍박한 역사가 있는지 연구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에서 부모세대가 저지른 만행을 찾아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귀감으로 삼는다. 이러한 노력은 필자가 독일대학에서 첫학기 시작시 사회학개론을 배울 때도 독일 최대기업의 나치협력의 다양한 사례들을 찾아보고 기준을 정하고 자료를 검색하고 인터뷰까지 하는 실습과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야만스러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 독일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역사에서도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많은 사건들이 있다. 그 사건들은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며, 동시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책임을 나눠갖게 하는 중요한 징표이다. 이 기억들이 박제되지 않도록, 정치적 언술에 이용되지 않도록 정직하고 치열하게 작업해야 한다. 최근의 가장 큰 비극인 세월호참사나 대구지하철참사, 제주 4·3사건 등을 다양한 형식의 미래지향적 자기비판에서 출발해 계속 질문하고 기억해야 함은 우리의 의무이다.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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