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로컬 카페 순례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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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31   |  발행일 2017-03-31 제39면   |  수정 2017-03-31
나는 글 쓰러 카페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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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로컬 카페의 내부 풍경과 여기서 판매하는 음료.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커피 파는 가게를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커피숍이 가장 정확한가? 그냥 커피집도 무난한 것 같고, 카페라는 말도 많이 쓴다. 커피전문점이란 말도 있다. 커피전문점에서 전문 분야인 커피 말고 비전문 메뉴를 시키려면 왠지 자부심 넘치는 주인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다. 이제 다방은 큰 도시에서 수가 줄었고, 그 말을 쓰는 사람도 예전만 못하다. 일단 여기서는 카페(cafe)라는 이름으로 통일하자. 커피를 포함한 음료수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카페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그곳에서 커피나 차 마시기를 즐긴다. 나도 이런 환경에 노출돼 있는 직군에서 일한다.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때로 혼자 생각하고 문서 일을 해야 할 때, 그때마다 커피 대신 술이나 담배에 의지해야 했다면 난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윤규홍이 됐을 게다.

내가 곧잘 가는 특별한 카페 몇 군데
단지 음료 먹거나 대화 장소라기보다
소음·정적에 무심·신경쓰임 섞인 환경
책 읽고 평론·칼럼 쓰기 좋은 묘한 매력

오하이오·플라방 등 곳곳의 로컬 카페
친숙한 듯 낯선 모습 ‘핫플레이스’ 등극
2030세대에 커피 매개로 위로·즐거움
맛보다 하나의 문화로 카페 탐방 인기


내가 곧잘 가는 카페가 몇 군데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곳은 커피플리즈와 앞산 투썸플레이스다. 커피플리즈는 주로 글을 쓸 때 찾아가는 곳이고, 앞산에 있는 가게는 가까운 사람 한둘과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한 곳이다. 책을 읽고, 평론을 쓰고, 또 지금처럼 칼럼을 적을 때 잘 되는 환경이 있다. 커피플리즈가 그렇다. 이곳에서는 뉴욕7번가에 있는 DOMA 카페 앤 갤러리에서처럼 혼자 온 손님들이 책이나 노트북을 펼쳐서 자기 세계에 파묻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재작년 늦가을에 며칠 밤낮을 원고 작성에 매달리던 중에 찾은 그곳에서 글을 쓰다가 눈앞이 하얘져서 고꾸라지기 일보 직전에 사장님이 급하게 구해온 우황청심환을 먹고 생환한 적도 있다. 내겐 이리저리 고마운 곳이다.

투썸플레이스는 그 근처에서 뛰어놀며 자란, 말하자면 대도시 안에서 내 고향 같은 동네에 있어서 자주 드나든다. 학교를 졸업하고 예술과 사회과학 언저리에서 일정한 수입 없이 가난하던 시기에는 늘 유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다시 대명동 앞산 주택가에 집을 마련하리라 맘먹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좋아졌는데 이사 갈 엄두는 못 낸다. 대신 가끔 차를 몰고 카페에 가서 발코니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앞산을 바라보는 게 내 즐거움이다. 이런 낙을 집에서도 누릴 요량으로(솔직하게는 찻값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통제해야겠단 생각에서) 살고 있는 아파트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면서 커피플리즈 식의 딱딱한 테이블과 투썸플레이스에 있는 안락의자를 들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카페에 안 갈까. 카페는 커피와 인테리어 이외에도 사람들이 드나들며 생기는 묘한 소음과 정적, 무심함과 신경 쓰임이 섞여 있다. 사람들은 카페를 단지 음료를 맛보거나 대화하기 위해서만 찾지 않는다. 용도는 다양하다.

로컬 카페가 뜨고 있다.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아니면 커피명가처럼 외국에서 수입됐거나 국내 대기업 또는 대구의 자생 브랜드로 세를 불린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아닌 생소한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은 보통 상권에서 조금 후미진 곳에 있다. 동성로에서 꽤나 많이 알려진 오하이오 또는 플라방은 중심지에서 떨어져 있다. 북성로, 대봉동, 범물동에 가서 잘 찾아보면 이런 로컬 카페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경대병원과 동부교회 인근의 삼덕동에서도 수를 불리고 있다. 이곳에는 오래된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 산업화시대 양옥과 간이한옥, 거기에 손님이 끊어져 빈 상가점포가 많다. 이런 건물들이 언뜻 볼 때엔 최소한의 인테리어와 성의 없이 걸어둔 듯한 간판, 그리고 꽤나 신경 썼을 법한 창틀 공사를 거쳐 친숙한 듯 낯선 카페로 변신한다.

동네 카페라는 말을 안 쓰고 로컬(local) 카페라고 부르는 까닭은 있다. 여긴 동네 사람들이 오진 않으니깐. 동네에도 장사만 될 듯하면 유명한 브랜드 커피가게가 들어오지 않나. 동네 미용실, 동네 중국집 같은 말을 쓰는 경우는 장소성보다 이용객이 누구냐에 따라 정의가 내려진다. 그런데 도심 주변에 퍼진 카페들은 대부분 딴 동네, 심지어 딴 지역 사람들이 찾는다. 골목투어가 대구 중구 관광의 명물로 떠오른 지금 투어의 한 가지 종목으로 카페 탐방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로컬 카페들은 소문에 앞서 미리 진행된 SNS 홍보를 통해 금방 유명해지는 일이 허다하다.

금방 타올랐으면 금방 식는 게 이치다. 오죽하면 뜨내기란 말이 생길 정도로 장사에는 단골이 중요하다. 그런데 로컬 카페는 한 번은 꼭 가야 되는 일종의 순례객들의 비중이 높다. 이들 방문객은 장소를 인증하는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딩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꾼다. 실제 세계와 사이버 세계가 겹친 이곳에서는 대개 커피 맛을 따지는 것보다 핫 플레이스에서 진행되는 ‘순례-체험-인증-복음전파’라는 종교 의례에 가까운 과정이 중요하다. 이곳을 주로 찾는 20~30대 청년세대는 아직 미각을 완전히 발달시키기 전이라 심층적인 커피 맛보다 달착지근한 풍미나 시각적 쾌를 내세운 특별 메뉴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더 많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내가 아는 주변의 몇몇은 ‘제대로 커피 공부를 해서 고급스러운 맛으로 승부를 보고 말 것’ ‘음악과 책으로 넘쳐나는 북카페 경영이 소원’이라는 낭만주의에 머물러 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지금 누리는 팝컬처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저급하고 변덕스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하다. 그들 정통주의적인 카페 창업자들이 내심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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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대중문화의 흐름은 문화 일반, 그중에서도 예술의 규칙과 같은 원리대로 움직인다. 카페 주인이나 손님이나 그들 모두는 어느 정도 자기도취에 싸인 표현주체, 즉 예술가들에 대입시켜 볼 수도 있다. 그들은 이 판에서 스스로가 일종의 광고판처럼 여겨지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각이나 외모가 가장 앞서있다고 자부하는 그룹이 핫 플레이스를 점령하면 평범한 다수가 그곳을 기웃거리고, 만약 그렇게 대중화되면 그 집 장사는 서서히 내리막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 하나의 예술 장르가 꽃피었다가 사그라지는 것과 같다. 나이 먹고 푸석해진 나 같은 이에게는 이런 로컬 카페의 속사정이 불만일 수도 있다. 그렇긴 한데 어쩌겠나. 평균으로 보아 그 어느 시기보다 궁핍한 지금 20대에게 술값보다 싼 커피 몇 잔이 주는 위로와 즐거움을 시기할 염치까지는 내게 없으니까 말이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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