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지방분권이 왜 필요한데…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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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31   |  발행일 2017-03-31 제23면   |  수정 2017-03-31
[조정래 칼럼] 지방분권이 왜 필요한데…

‘잘 모르겠거든요.’ 기자의 한 지인(知人)은 지방분권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두 주에 걸쳐 연속으로 내보낸 칼럼 ‘이젠 지방이 촛불을 들 때’와 ‘지방분권개헌의 걸림돌들’을 읽고 난 후 그가 보낸 감상평이기도 하다. 그의 평가와 지적은 적확하고 이론에 치우친 탁상물림의 약점과 아픈 곳을 찌르기에 충분해서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그는 시골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청장년기를 보냈고, 금융 관련 국가공무원으로 청와대 근무 이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대구지역 금융권에 고위 간부로 있다. 그의 경험과 경력은 지방분권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 평가를 하기에 적합하다. 따라서 그를 설득하지 못하고서는 지방분권과 분권개헌 이후도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과연 일반 시민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의 문제 제기가 둔기로 머리를 친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2년, 지방분권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지방분권의 현주소가 여전히 당위성 설파에 머물고 있지나 않은지, 때늦은 반성과 회의를 하게 된다. 지방분권이 비수도권 주민들의 의식과 행동 속으로 스며드는 데 실패한 것은 아닌지, 늦었지만 신속 정확한 고찰을 요구한다. 언론인을 포함한 지방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영혼 없이 입으로만 앵무새처럼 되뇐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지방분권의 의식화 혹은 대중화가 문제다. 비수도권 지방민이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실생활 속에서 자각하고 있는가, 그 척도는 지방분권운동의 성패를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주민들이 실감하지 못하는 지방분권은 공허하고 공전할 수밖에 없다. 설령 지방분권적 가치와 내용이 헌법에 구체적으로 반영된다고 하더라도 주민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반쪽짜리에 불과할 터이다. 특히 지방분권은 제도로나 시혜 차원 모두 공공재인 만큼 개인적 비용과 노력, 참여 없이도 그 편익의 공유가 가능해 성취 이후에도 무관심을 유발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따라서 지방분권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상시 생활공간에서 세세하게 설파되고 역설돼야 한다는 제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언론의 심층기획보도 요청에는 더더욱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정부와 의회, 분권 관련 단체 등 지방분권운동 주체들도 각성을 촉구받아 마땅하단다. 지방분권이 되면 시장, 군수·구청장, 지방의회의원만 좋아지는 게 아니냐는 물음은 우리 지방 내부의 분권과 균형발전의 현주소에 대한 진단부터 해봐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이나 다름없다. 내재적 분권 없이는 지방분권의 혜택이 풀뿌리인 기층주민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기득권 토호세력들의 전유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예산의 입안에서 집행까지 재정의 주체로서 지방정부의 역량과 능력에 대한 중앙정부의 불신은 지방정부 수장과 공무원들의 각별한 각성과 대응 없이는 쉬 극복되지 않을 고정관념이다.

정부의 지방재정 통제 방식은 지금처럼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이뤄져야 마땅하다. 자치 선진국은 예산·재정 자율권을 주는 대신 잘못된 집행과 방만 운용 등에 대해서는 엄격한 감사를 하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에는 페널티를 부과한다. 대단히 합리적이고 자치정신에 부합한다. 애시당초 지방정부를 낮춰보는 관행이 지속되는 한 지방정부의 유능함은 영원히 실현되지 않는다. 정부가 아직도 선 능력 배양 후 권한 이양이라는 아날로그식 사고의 포로가 돼 있다면 큰 문제다. 지방정부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 수도권론자들의 시각이 비수도권 지방을 봉건체제, 근대화 이전의 영주-농노 쯤의 관계로 인식하는 저차원이다. 교정이 화급하다.

지방분권은 관심과 참여를 먹고 자란다. 분권의 필요성에 대한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가열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제도에 무임승차하려다가는 불가역적 지방분권적 법제 마련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지방분권의 필요성에 ‘모르겠다’는 소리가 수도권에서든 지방에서든 다시 나와선 안 된다. 지방주민의 참여가 없는 풀뿌리 민주·자치는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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